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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쇼핑과 외로움 / 조이스 박

등록 2020-11-19 18:04수정 2020-11-20 13:57

조이스 박ㅣ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디드로 효과라는 것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인인 드니 디드로는 어느 날 아름다운 진홍색 침실가운을 선물 받게 되었다. 이 가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낡은 가운을 버리고 새 가운을 걸치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름다운 새 가운과 어울리지 않게 침실의 벽지와 가구가 모두 낡아 있는 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새 가운에 맞춰 가구를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의 상품을 구입하고 난 뒤 이에 연관된 상품을 연달아 구매하게 되는 현상을 디드로 효과라고 부른다.(레이철 보츠먼의 <위 제너레이션> 참조) 상품 제조사나 광고사들은 쇼핑의 이 도미노 효과가 좋다며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내 눈에는 이런 쇼핑 현상에 도사린 사람들의 외로움이 보인다.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인이 박이도록 들어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없이 쏟아지는 상품들과 그 광고 이미지에 둘러싸여 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광고뿐 아니라 ‘신상’에 대한 포스팅도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신상’이라는 포장 뒤에 숨은 사람이다.

신상이 나올 때마다 ‘덕질’이라면서 한 분야의 물건들을 쓸어 담듯이 사는 사람들도 보인다. 누구보다도 먼저 사용 후기를 포스팅해야 하는 것 같고, 누구보다도 그 관련 제품에 대해 줄줄 꿰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런 신상 전시를 통해 ‘덕질’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유대감을 도모하는 것 같고, 감탄하는 이들의 ‘좋아요’를 통해 인정을 구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내보이는 전시를 통해 인정을 구가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속성이기도 하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쌓여서 묵을수록 가치 있어 보이는 음악, 독서, 역사 등등에 대한 애호와 달리, 신상을 통해 덕질 유대와 인정 구가를 도모하면, 그 사람은 늘 발 빠르고 숨 가쁘게 새로 쏟아져 나오는 신상을 쫓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신상들은 낡은 상품이 되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상품들과 뒷전으로 밀려나는 상품들 틈바구니 어디 즈음에서, 작은 인간이 허둥대는 것이 보인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보인다.

“나는 내 낡은 가운의 완전한 주인이었는데 이제 새 가운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결국 디드로는 이렇게 한탄을 했다. 디드로는 물건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 저 물건들의 주인됨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는 무엇이라도 소유해서 그 주인이 되고자 하지만 결국 무엇의 노예가 되고 만다. 몇몇은 자신이 너무도 공허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같다.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에 대해 괴롭게 토로하는 글들도 보인다. 왠지 포장도 뜯지 않은 수많은 택배 상자에 둘러싸여 앉아서 다 부질없다고 넋 놓고 중얼거리기도 할 것 같다.

마음의 구멍을 어떻게 채우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에 구멍이 없는 이들도 거의 없고, 구멍을 다 채웠다는 이도 보지 못했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알 것 같다. 나를 불합리한 행동으로 몰고 가는 무언가가 내 속에 있으면, 그 힘이 나를 몰고 갈 때 일단 한번이라도 끌려가지 않고 한 발자국 발을 빼고 뒤로 물러나보는 게 도움이 된다. 그렇게 내 결핍에 내가 몰려 끌려가지 않고, 내려다볼 수 있게 되면 결핍이 돌리는 쇼핑의 악순환, 헛된 유대와 인정에 대한 갈구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한번이라도 끊어줄 수 있다. 악순환은 한번이라도 끊어주는 게 중요하다. 한번이 되면 두번도 해보고, 다시 휘말릴지라도 또 물러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체험을 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해보아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그 지식은 나의 힘, 나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생긴 것 역시 자신의 힘이 된다. 그러면 여전히 외롭겠지만 최소한 휩쓸리지 않고는 살 수 있다. 디드로처럼 한탄하며 자신을 객관화하는 경지까지는 갈 수 있다. 외로워서 하는 쇼핑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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