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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수험생과 공교육 죽이는 ‘킬러 문항’ / 권혁철

등록 2020-11-23 15:27수정 2020-11-24 02:39

수능이 끝나면 이른바 ‘킬러 문항’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킬러 문항은 ‘문제가 너무 어려워 시험 보는 사람의 멘탈을 킬(kill)하는 문제’란 뜻이라고 한다. 입시당국에서는 어감이 살벌한 킬러 문항 대신 ‘최고난도 문항’이라고 점찮게 표현한다.

킬러 문항은 주로 수학에서 나온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수학 21번, 29번, 30번 문제가 킬러 문제라고 통한다.(21번과 30번을 꼽는 의견도 있다.) 수능 수학은 30문제를 100분에 풀어야 한다. 평균 한 문제를 3분 안팎에 풀어야 한다. 그런데 교육방송(EBS) 수학 강사도 킬러 문항 하나 푸는 데 20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20분은 막히지 않고 한꺼번에 풀었을 때 이야기다. 킬러 문항은 여러 개념을 복잡하게 얽어놓았기 때문에 여러 단계 풀이를 거쳐야 답이 나온다. 만약 어느 한 단계에서 막히면 40분을 훌쩍 넘긴다. 최상위권 학생은 다른 수학 문제들을 ‘빛의 속도’로 빨리 풀고 나머지 시간을 킬러 문항 풀이에 쓴다. 최상위권이 아니면 킬러 문항은 찍거나 포기한다.

물론 킬러 문항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봐야 수학적 사고 능력이 발달하고, 대입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킬러 문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수학 교사, 입시학원 강사는 수험생들이 킬러 문항을 수학적 사고력으로 푸는 게 아니라 외워서 푼다고 반박한다. 수능 시험장에서 낯선 문제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평소 다양한 고난이도 문제 풀이 훈련을 반복·숙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학교에선 해줄 수 없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킬러 문항 전문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킬러 문항이 존속하는 것은 최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 확보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1~2% 수험생을 골라내고 줄세우기 위해 98~99%를 일부러 틀리게 만들고, 들러리 세워 배제하는 것이다. 변별력 확보가 이 방법밖에 없을까.

해마다 수능출제위원장은 수능을 앞두고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면 충분히 풀 수 있게 출제했다”고 말한다. 12월3일 치뤄지는 올 수능에선 이 말이 지켜지기를 소망한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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