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돈 디에고. 별명 “조로”는 에스파냐 말로 ‘여우’라는 뜻. 이야기의 배경은 유럽도 멕시코도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다. 원래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땅이었다.
조로의 모델이 누구일까? 의견이 엇갈린다.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멕시코로 건너와 에스파냐 정부의 압제에 맞서 싸운 아일랜드계 풍운아 윌리엄 램포트라고 주장.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은 19세기의 호아킨 무리에타라고 본다(이쪽이 정설이다). 무리에타는 멕시코 사람이었다. 황금을 캔다며 몰려든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분노해 강도단을 이끌고 싸움을 벌였다. 무리에타의 무용담이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고, 소설가 존스턴 매컬리가 1919년에 “조로”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몇 편 썼다. 그때 일러스트를 보면 조로는 멕시코의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와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썼다.
이듬해 영화화되며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챙이 작은 가우초 모자와 눈만 가리는 안대를 쓴 까닭은, 주연 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의 얼굴이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무성영화 <마크 오브 조로>가 개봉한 날이 1920년 11월27일, 지금 봐도 잘 만든 영화다(“마스크”가 아니라 “마크”다).
영화의 성공 덕분에 시리즈가 백년 동안 쏟아져 나왔다.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을 줬다. 배트맨 시리즈가 ‘조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하다. 1939년 5월, 첫번째 배트맨 만화인 ‘화학회사사건’에서 고든 국장은 말한다. “브루스 웨인은 사는 게 영 지루한가 보군.” 처음에 브루스 웨인은 돈 디에고와 꼭 닮았더랬다. 미국 백인에 맞서 싸우던 멕시코 의적이 미국 대중문화의 히어로가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