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06년쯤으로 기억한다. ‘무국적자’의 문제를 처음 접했다. 미얀마 내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던 중 로힝야 집단에 대해 알게 됐다. 미얀마 라카인주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이고 세계적으로 백만명이 훨씬 넘지만 미얀마 정부로부터는 ‘불법체류’ 방글라데시인들로 취급되고 있는 무국적자들. 미얀마 정부와 미얀마인들의 박해를 피해 상당수가 방글라데시 등으로 이주해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하는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그 후 전세계 무국적자가 천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이들은 학교나 병원에 갈 수 없고, 일자리를 구하거나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없고, 집을 구하거나 결혼을 할 수도 없다. 국적은 ‘다른 권리를 가질 권리’다.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이라는 것이 있다. 이 협약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마찬가지로 무국적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보호, 거주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 의하면 무국적자에게는 차별 금지, 종교의 자유, 재산권, 재판청구권, 사회적 급부권, 교육권, 노동권 등이 보장된다.
놀랍게도 한국은 1962년에 이 협약에 가입했다. 비록 정부가 ‘인류의 기본권리 보장 및 인류평등 원칙’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한국에 무국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가입 이후 6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이 협약의 내용을 국내법으로 이행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법무부 장관에게 이 협약에 규정된 무국적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지만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에도 무국적자가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이 활성화되면서부터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에 이르는 무국적자들이 한국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접한 이들은 위장결혼임이 밝혀져 한국 국적을 상실했는데에도 본래 국적국에서 국적을 회복시켜주지 않는 이들이었다. 언제든 단속되면 ‘불법체류’를 이유로 구금되고, 강제퇴거될 국가가 없으니 거액의 보증금을 내면 일시적으로 구금에서 해제되지만 법적으로는 종신 구금 상태였다. 체류 자격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신분 자체가 없으니 취업뿐만 아니라 임차 등 재산관계나 혼인 등 가족관계와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두번째로 접한 이들은 화교 출신 혹은 화교 출신이라고 정부가 주장하는 탈북자들로 중국이 국적 확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였다. 이들도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장기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탈북을 해서 중국에 체류하고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중국인 신분을 위조했을 뿐임을 호소했다.
그래도 위 두 집단에 대해서는 법무부가 내부지침 등을 통해 체류허가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점점 다양해지는 무국적자의 양상이고 이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체류자격 없는 무국적자들에 대해 ‘외국 국적을 확인받아 오면 체류자격을 주겠다’는 기이한 방침(?)까지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결혼한 외국인 여성이 혼인 외 자녀를 둔 경우, 본국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를 하였으나 출입국 당시 서류상 사실이 아닌 기재 내용을 근거로 귀화가 취소된 경우, 중국이나 대만 어디에서도 온전한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중국계 사람의 경우 등 법률상 무국적자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접한다. 무국적자 판정 절차의 도입, 무국적자에 대한 권리 보호의 규정 등 법제상, 관행상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국적자의 권리 침해의 문제와 관련 사회문제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난민이 돌아갈 수 없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이라면 무국적자들은 돌아갈 곳이 없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고도 약 60년간 무국적자의 보호라는 법적 의무를 위반하고 법 적용을 방치해온 정부의 뼈아픈 각성과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연대와 공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돼버린 이들 무국적자들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