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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공시가격이 건보료 인상의 원인인가 / 홍장표

등록 2020-12-07 15:26수정 2020-12-08 02:42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에서 올해 11월분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가 가구당 평균 8245원 올랐다고 발표했다. 건보공단은 매년 11월 지역가입자의 소득과 재산 증감을 확인해 보험료를 조정하는데, 올해 지역보험료 상승률이 9.0%로 큰 폭 오른 것이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이렇게 보험료가 오르면, 자영업자와 소득이 미미한 은퇴자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일부 언론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정부가 공시가격을 올려 서민들에게 건보료 폭탄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고는 공시가격 현실화 대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시가격 현실화가 아니라 형평성에 어긋나는 건강보험료 부과방식이 문제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사이에 보험료 부과방식이 다르다. 직장가입자는 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고, 지역가입자는 소득 이외에 주택과 자동차에도 보험료를 부과한다. 이처럼 재산과 자동차에 대해 보험료를 매기는 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은퇴로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바뀌면, 소득은 줄어도 보험료는 확 늘어난다. 반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롤스로이스를 타도 보험료가 면제된다. 이 때문에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형평성이 오래전부터 문제 되어왔다. 주택 가격이나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인한 건보료 인상도 직장가입자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지역가입자에게만 해당된다.

그뿐 아니다.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산정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 현행 재산보험료 부과방식에서는 주택 가격이나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 중저가 주택 보유자나 전월세 주거계층의 부담이 더 많이 늘어난다. 재산보험료는 재산평가액을 60등급으로 나눈 점수에 점수당 일정 금액(195.8원)을 곱해 산출된다. 그런데 재산평가액이 작은 하위구간에서는 등급이 촘촘하고 상위로 갈수록 재산등급의 구간이 넓어진다. 이 때문에 하위계층일수록 재산평가액이 조금만 늘어도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실거래가 3억원 주택이 1억원 오르면 추가 보험료가 1만3510원이다. 하지만 12억원 주택이 2억원 오르면 추가 보험료는 5670원이다. 전세보증금도 마찬가지다. 전세보증금이 1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오르면 추가 보험료는 2만3880원으로 무려 125.8% 증가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변화로 형평성에 어긋나는 보험료 부과방식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적은 소득에도 부담이 컸던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줄이고 소득보험료 비중을 높이는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왔다. 1단계로 2018년 7월 지역가입자의 재산과 자동차보험료를 줄였고, 직장가입자의 소득보험료는 높였다. 앞으로 2022년 7월 2단계 개편이 예정되어 있다.

개편 방향은 옳다. 자동차보험료와 재산보험료는 줄이고 소득보험료는 늘려야 한다. 문제는 속도다. 애초 2단계 개편 일정을 1단계 개편 4년 뒤로 잡은 탓에 개편 속도가 느린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 공제한도를 지금의 500만~12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하는 2단계 계획을 앞당기면, 서민과 중산층은 부동산이나 전월세 가격이 올라도 보험료 부담은 올해보다 낮아진다.

속도를 내야 할 이유는 더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불안정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법 개정이 예고되어 있다. 향후 가입대상을 자영업자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들 영세 자영업자나 불안정 취업자는 대부분 지역가입자 자격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여기에 고용보험료가 더해지면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그래서 고용보험을 확대하려면 지역가입자를 차별하는 건보료 부과체계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든 지역가입자든 소득에 따라 공평하게 내는 게 맞다. 정책 환경이 달라지면 정부는 이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고, 필요할 때 법을 바꾸는 것은 응당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이 길이 반드시 가야 될 길이라면 기다릴 이유가 없다. 2단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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