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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0 17:19 수정 : 2005.02.10 17:19

조갑제씨가 죽은 박정희를 살려내는 푸닥거리를 하고, 진중권씨가 조갑제씨의 흑마술에 대항하는 저서를 낸 지도 꽤 세월이 흘렀다. 그때 나는 두 사람의 책을 읽고 여러모로 진중권씨의 판정승이라 여겼다. 하지만 박정희 문제가 논쟁 따위로 종식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양 박정희 기념관 문제가 불거졌다. 그런가 하더니 이번에는 광화문 현판 교체,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박지만씨의 소송, 육영수씨 피살 사건에 대한 자료 공개, 그리고 한-일 회담 외교문서 공개를 둘러싸고 박정희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논란들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 조갑제씨의 저서나 박정희 기념관 따위는 보수층이 죽은 박정희를 살려내려 해서 문제였던 것처럼 보이는데 반해, 지금 논란거리들은 아직 죽지 않은 박정희를 죽게 하려 해서 문제인 듯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최근 상황에 대해서는 이런 논란이 박근혜씨에 대한 정치적 공세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많다. 좀더 세련된 형태로는 최근 경제사정의 악화와 정치의 공전에 따른 민심의 복고적 성향을 차단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느슨하기는 해도 음모론에 기대고 있는 이런 해석들이 조잡한 것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때가 되어 공개되는 외교문서나 상업적 이익을 목표로 제작된 영화나 문화재의 원형 복원 문제들을, 그냥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극히 예민한 문제로 보고 논란거리로 증폭해나가는 보수층의 모습이 편집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참여정부 음모론 만큼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그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박정희씨가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은 채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도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그의 마지막 만찬에서 불려진 노래처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때 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회에 ‘비’를 내리게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내 생각에 그것은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에 조응하는 경제발전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도성장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사회, 민주화로 인해 이익갈등은 심화되었지만 그것을 조정하기는 어려워진 사회, 냉전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가장 값비싼 형태로 그 비용을 치른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새로운 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박정희가 살아와도 안될 일이거니와 박정희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87년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박정희 식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런 경제체제는 글로벌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무덤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87년 체제의 경제적 실패가 가시화된 바로 그 시점이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양산한 고통이 박정희 시대를 ‘그래도 좋았던 시대’로 느껴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자생적인 정서를 타고 박정희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변형과정 속에서 다시금 사회적 권력을 거머쥔 보수층은 박정희 향수를 통해서 자신의 정통성을 재수립하고 빈곤층의 고통을 환상적으로 위무하는 동시에 정부의 무능을 공격했다.

하지만 환상을 버리고 우리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하는 길은 민주화의 성과를 보존하고 확대하는 가운데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말끔한 데라고는 없는 민주적 절차 속에 사회적 의제를 용해시켜 나가는 것, 끈기있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새로운 제도 설계를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통해서 민주화가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 게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는 일이다. 그럴 때만 박정희씨는 “비가 와도 생각나지 않는” 그때 그 사람이 될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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