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ㅣ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조 바이든이 11월 대선에서 이겼다. 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얻었던 것과 같은 수의 선거인단(306명)을 확보했다. 바이든은 전국 득표에서도 트럼프를 700만표, 4%포인트 이상 차이로 이겼다. 선거가 박빙은 아니었는데도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선거가 사기라는 증거를 단 한 조각도 내놓지 못했다. 트럼프의 최근 계획은 내년 1월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고 플로리다에서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억울한 패자’ 연기는 한심하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공화당 의원들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분석에 따르면 12월 초까지 공화당 의원 249명 중 27명만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했다.
불행하게도 많은 미국인들 또한 대선의 현실을 부정한다. 공화당원의 25%만이 선거 결과가 정확하다고 믿는다.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 중 다수는 민주당이 의회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뒤처지면서도 대선 결과는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는 음모론을 옹호한다.
이런 현실부정주의(디나이얼리즘·Denialism)는 폭력적 요소를 갖고 있다. 미시간주 국무장관 집 앞에는 무장한 시위대가 나타났고, 다른 주의 공무원들은 살해 위협을 받았다.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훨씬 큰 현실부정주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내며 미국을 휩쓸고 있지만 미국인 수백만명은 마스크 착용과 모임 자제 같은 가장 간단한 예방 조처도 취하지 않는다. 미국인의 거의 3분의 1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부풀려졌다고 믿는다. 미국인 10명 중 6명은 백신이 나와도 맞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많은 미국인이 기후 위기를 부정한다. 주요 국가들 가운데 미국보다 기후 변화의 과학을 더 의심하는 국민들을 가진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미국인 15명 중 1명은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한다.
미국의 위험한 현실부정주의 중에는 여론조사로 측정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의 인구 변화를 부정한다.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2045년이면 백인은 더 이상 미국 인구의 다수가 아니다. 트럼프는 이민을 제한하고 서류 미비자를 추방하고 백인 민족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등 인구 변화 추세에 맞서려고 온갖 시도를 했다. 많은 백인들이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라져가는 특권을 지키려 싸우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눈에 안 보이는 현실부정주의는 세계 속 미국의 위상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세계 최대이고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같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아니다. 부인할 수 없는 초강대국 중국이 있다. 좀 더 정확한 국내총생산 측정 방법으로 알려진 구매력 평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중국 경제가 실제로 미국 경제보다
6분의 1 더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과 언젠가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을 설립했고, 유엔 기구들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또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적 수준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미국의 힘이 쇠퇴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 더디다.
미국은 한때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자랑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6년 의심스러운 환경에서 대통령이 되더니 2020년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훼손했다. 2020년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은 이런 민주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트럼프가 대선 재출마를 선언하면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그 곁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미국과 세계에 끼친 해악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모두에게 가장 위험한 현실부정주의로 판명 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