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의 재정 추이를 요약할 수 있는 단어는 ‘증가’이다. 한두 해는 대선 때 약속한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적자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5년 단임제 정부의 임기 마지막에는 균형재정을 가져가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에 들어올 정부를 고려해 재정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최근 우리 재정이 처한 환경을 살펴보면 임기말에도 균형재정을 가져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을 막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재정지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감염자 검사, 격리, 접촉자 추적 조사 등에 대한 지출이 필요하다. 방역단계 상향에 따른 영업금지 업종들에 대한 재정지원도 필요하다. 자영업자에 대한 피해보상 없이 지속적인 영업중단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관련 대책 외에도 최근 발표된 뉴딜 정책들이 있다. 향후 우리 경제의 먹거리를 찾고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이 예고되어 있다. 이러한 재정 여건을 고려해보면 당분간 재정적자 국면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국가부채가 늘고 있다는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국민의 혈세를 가치 있게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의 사업은 예산 과정에서 필요한 사업인지, 다른 사업들보다 시급한지, 적절한 방법으로 사업이 시행되는지 등에 대한 검토를 거친다. 하지만 일부 사업은 숙고의 과정 없이 편성되거나 기존 사업이 표지갈이를 통해 사업 이름만 바꿔 시행되는 경우도 많다. 혹은 국회의 예산심사 과정에 쪽지예산처럼 아예 공식적 예산 과정 없이 예산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사업의 도입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이 어렵다면 사후에라도 기획된 정책의 효과가 없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은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우리 재정당국도 재정성과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다양한 재정성과관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성과평가 결과가 예산에 반영되는 환류 과정이 부족하다. 평가는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가 예산에 반영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평가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둘째, 평가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부족하다. 신뢰받는 평가 증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업 수행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가 생산, 수집, 분석되어야 한다. 하지만 평가 결과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사업 담당자들이 사업 관련 데이터를 성실하게 수집하여 공개할 유인이 별로 없다. 차라리 데이터가 없어 평가가 부정확하게 진행되는 것이 정확한 자료를 이용하여 나쁜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낫다. 수많은 행정자료가 생산되지만 평가에 잘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서는 효과성이 없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재정사업을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골라내기는 어렵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의회는 정부 전반에 이른바 증거에 기반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새로운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서 2019년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이 제안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평가를 위한 자료 접근성을 개선하도록 조치하였다. 부처가 생산하는 정보를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생산하고 이 자료에 부처와 연구자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조치하였다. 둘째, 부처의 학습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부처의 증거기반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데이터 기반 평가는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정보의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수집한 개인정보가 부적절하게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대중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증거기반 정책수립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히 정책 설계 단계와 정책 시행 이후 정책의 개선에 과학적 증거를 활용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증거의 적극적 활용을 위한 공무원의 유인을 높일 수 있도록 평가 결과는 기관장에게 직보하도록 하고, 증거에 기반한 정책 개선 여부에 근거하여 기관장과 담당자에게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증거기반 정책의 수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혈세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증거기반 정책이 국가부채 폭증 시대에 납세자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