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 악의 근면성

등록 2020-12-20 16:18수정 2020-12-21 02:40

김한민 ㅣ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21세기에 절대선·악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들이 끊이지는 않지만,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따르면 이전 세기들보다 폭력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곧 죽일 듯 서로를 헐뜯는 정치인들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절대악’이라고 보기보다는, 특정 맥락에서 악역을 맡은 존재로 보지 않을까 싶다. 선악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흐름과 대조적으로 선명해지는 것이 있으니,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악영향의 실체이다.

문명의 성취를 아무리 뽐내도 자연에 지은 ‘업’의 결과가 부인하기 힘들 만큼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정착하는 곳마다 다른 생물종을 멸종시킨 전적으로 유명한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보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본래부터 걷잡을 수 없이 파괴적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파괴력은 그 수준이 다르다. 선진 산업국가들의 책임이 훨씬 크긴 해도, 현대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기여하는 분야가 바로 자연 파괴이다. 글로벌 소비주의 사회는 너무도 쉽게 인간을 반생태적 생활방식에 편입시키기에, 일개 시민도 너끈히 ‘제 몫’을 해낸다.

이미 진부해진 ‘악의 진부성’을 논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전범 아이히만이 “매우 근면한 인간이며, 근면성 자체는 범죄가 아니지만,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했다. 고쳐 쓰자면, ‘다른 생물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이 지구에 대한 범죄를 낳은 것. 이 ‘생태적 악’에서 특기할 점은 평범성뿐만 아니라 그 행위자들의 범접하기 힘든 부지런함과 꾸준함이다. 세대와 정권이 바뀌어도 자연 파괴만큼은 한결같다. 겉으론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이미 보유한 석탄발전 사업의 이익은 깨알같이 챙기기로 작심한 대기업과 그들의 집요한 로비, 조금이라도 ‘노는’ 땅은 샅샅이 찾아내 파헤치는 토건족, 탄소 중립의 구호가 무색하게 전국 각지의 공항 신축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정치인과 “무착륙 관광 비행” 같은 고탄소 상품을 전폭 지원하려는 정부 공무원들, 환경 기사들을 굳이 찾아다니며 악성 댓글로 수놓는 네티즌, 하루도 빠짐없이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잔과 배달 포장 쓰레기를 열심히 (결국 바다로) 나르는 ‘배출’의 민족….

인간의 악영향을 최소화해보려고 노력하는 입장에 서 보면, 끝 모를 환경 파괴 노력에 대응해야 하는 무한의 ‘두더지 잡기 게임’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태어난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생태적 원죄’를 속죄하려는 종교인인가? 아니다. 단지 인간이 지구상의 어떤 생명과도 비교할 수 없이 파괴적인 힘을 지닌 사실, 즉 인류세의 도래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소임을 다하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마음 가는 대로만 하면 늘 법도에 어긋나는’ 존재, 생태적으로 선한 본능이 말소되어 생태계의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려면 엄청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까? ‘에코’라는 어원(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의 뜻은 집·살림)을 공유하는 경제(economics)와 생태(ecology)의 개념은 언제부터 분리되고 대립하게 되었을까? 오늘도 자연에 나쁜 짓을 하느라 여념 없는 세상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메아리를 기대할 순 없으리라. 하지만 유사 이래 처음 인류가 지구에 선행을 해야 하는, 그것도 전에 없이 부지런히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도래한 것도 사실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나태’(sloth)는 7대 죄악(칠죄종)에 속했다. 그러나 지구의 관점에서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다소 게으른 자들이야말로 고마운 존재다. 부디 내년엔 좀 나태해다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