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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이미 해체된 가족의 폐허 속에서 / 권김현영

등록 2020-12-22 15:17수정 2020-12-23 02:43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결혼이 지금과 같이 한번 하면 자동연장되는 종신계약이 아니라 5년마다 갱신해야만 유지되는 제도로 변한다면 어떨까? 정여랑 작가의 장편소설 <5년 후>에 나오는 설정이다. 소설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인구소멸 직전까지 출생률이 떨어지자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수정하기로 한다. 그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결혼갱신제. 결혼하고자 하는 부부는 갱신제와 종신제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종신제는 이전의 결혼과 동일하고 갱신제는 5년에 한번씩 갱신하겠다는 의사 표명을 해야 결혼이 유지된다. 단지 선택 하나가 늘어났을 뿐인데 많은 게 변한다. 종신제를 선택해야 신혼집 마련에 자금을 보태주겠다는 부모가 등장하고, 갱신제로 바꾸고 자연스럽게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는 부부 이야기도 나온다. 결혼갱신제의 도입은 결혼을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만들어낸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0점대 출생률 0.98을 기록한 한국에서 출생률이 0.52에 이르자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배경 설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소설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극렬반대파의 시위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혼제도 개혁에 앞장서고 후속 조치와 대책을 모두 준비해놓은 유능한 정부의 존재였다.

소설 밖 현실은 어떤가. 2019년 출생률은 0.92명이었고, 2020년 3분기 현재 합계출생률은 0.84명이다. 출생률의 그래프가 가파르게 꺾이는 동안 저출생 관련 대책으로 결혼을 권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주거와 직업의 안정성이 높아지면 결혼을 원할 것이라는 가설을 중심에 놓고 저출생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여성들은 학력이 높아지고 직업이 안정되고 경제적인 능력을 보유할수록 결혼을 원치 않았다. 2020년 6월8일에는 30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때 남성은 76.8%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했고, 여성은 67.4%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20년 4월 콘돔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코로나 베이비붐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베이비붐은커녕 출산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콘돔 수급의 실패와 피임약 공급 부족으로 원치 않는 임신과 그에 따른 빈곤과 폭력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한 바 있다. 우려는 즉각 현실로 드러났다. 코로나 시대 출산율은 떨어지고 이혼은 늘고 결혼은 줄었다. 2020년 3분기 혼인 건수는 작년 동기 대비 11% 감소하여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최하의 수치다.

사회적 연결은 인간 경험의 기본 속성이고, 이를 통해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위안을 찾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조차 결혼과 가족과 같은 기존의 강력한 사회적 연결이 대안은커녕 차선의 선택조차 되지 못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전 팔루디는 “여성들이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믿는 것은 결혼반지와 아기 침대가 아니라 젠더 정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현재의 어려움이 겹쳐 왔을 때조차 2030 여성들은 가부장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남은 것은 한가지뿐이다. 결혼제도를 시대에 맞게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고, 혈연 중심의 가족을 넘어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나와 연결된 타인들은 띄엄띄엄 떨어져서 빵을 굽고 냉장고를 비우고 어디선가에서 넘치게 들어온 먹을거리들을 들고 마스크 너머로 꾸러미를 건네면서 시간을 보냈다. 새벽에는 가끔 고양이 응급차가 소환되었고, 술 마실 때 듣기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줌으로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며, 매일매일 취소되는 일들의 목록을 한숨 쉬며 바라보았다. 도나 해러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혈연 중심을 벗어난 괴상한 친족(oddkin)이 만들어졌고, 이 관계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일시적인 것이었을지언정 삶을 지속하게 해줬다. 페미니즘은 가족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다. 이미 해체된 가족의 폐허 속에서 다른 이파리와 줄기를 연결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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