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0 17:31
수정 : 2005.02.10 17:31
작년 2월 어느 날, 딸의 대학교 졸업식에 갔다. 손녀가 하 귀여운, 팔순 어머님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고, 아내 또한 뿌듯한 자긍심으로 얼굴이 환했다.
학교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석조건물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식장을 찾았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 학생이나 노동자의 함성이 메아리치던 노천극장이었다. 상경계열에 배정된 좌석 위쪽에 가보니 아무도 없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래쪽 스탠드로 옮겨갔다. 스탠드는 위쪽으로 반이 텅 빈 셈. 무대 앞 평지에는 상 타는 학사, 석사·박사 500~600명이 자리를 꽉 메우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 총장님의 졸업식사가 소음을 뚫고 들려왔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날아오는 기러기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떼를 지어 질서 있는 가운데 함께 협력하는 까닭에 멀리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좋은 말씀인데 이게 웬일인가. 평지, 스탠드 할 것 없이, 가운 입은 친구들이 어깨동무로 사진 찍고 잡담하고 돌아다니고, 상 주고 학위 수여할 때는 난장판이었다. 아예 참석하지 않은 식장 밖의 졸업생 4분의 3 정도는 캠퍼스 여기저기서 배회하고 있을 터.
마침 식장 저 아래서 귀부인이 안고 가는 개가 눈에 띄었다. 부인보다 더 요란하게 치장한 개가. 순간 시골 논배미에서 꼬마들 줄오줌처럼 연상되는 15년 전 고구려 중원비 답사 때 한 장면이 스쳤다. 지금은 서울에 계신 이우태 교수님이 소리쳐 부르기에 가보니, “행님요, 이게 바로 개판이라는 겁니더.” 세로 10여m 가로 20여m 직사각형에 1m 높이의 베니어 울타리 안에 개 100여 마리가 노는데, 도대체 한 마리도 같은 방향 같은 자세가 아니었다. 군대 있을 적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개판의 실체를 본 것이고 그 비슷한 모습을 졸업식장에서 또 보다니. 어디 여기뿐이랴. 2월이면 전국에서 자행되는 이 ‘개판 졸업식’이야말로 우리나라 인성교육의 총체적 부실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학교의 추악한 몰골이다. 또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졸업식이 있을까. 국가의 수치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무질서의 효용이란 면에서 질서 일탈이 규격에 충실한 우등생과 교수를 조롱하는 반항 학생의 창조적 시각에서 이 개판현상을 조명할 수 있을까? 이건 아니다. 혹자는 아래와 같이 이르리라. 역대 군사독재 시절 개발 위주의 빨리빨리 경제정책이 빚은 자본주의 윤리체계의 ‘수입’ 거부, 민주화의 제도 구축에만 주력한 민주화 투쟁세력의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외면, 일제의 전통 파괴 정책을 이은 서구추종주의자들의, 개인 인격 함양을 중시하는 선비문화 무시, 대학 입시 경쟁이 부른 배타주의 만연 등등 다 옳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는 점은 대학교 강단의 지적 퇴행이다. 오로지 전공만을 고집한 채 사회모순에 함구하고 사회에 대한 개인·집단 윤리 의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교수방법이 문제다. 인성이 결여된 기능인의 대량생산 체제에 충실히 복무하는 교수가 문제인 것이다.
인이 박인 대학교의 이 ‘개판 졸업식’을 당장 고칠 방법은 없을까. 논의 끝에 서원대학교에서는 7년 전에 노천극장에서 교실로 판갈이를 단행했다. 성과는 뜻밖의 대박. 정성껏 가꾼, 따뜻한 교실에서 엄숙함과 유머가 뒤섞이는 가운데, 졸업생 한명 한명 불러 그의 장단점을 덕담으로 포장하면서 학위증서를 주는, 말하자면 상과 연이 먼 학생들 대다수 중심의 졸업식이 거행된 것이다. 간단한 뒤풀이까지 곁들이니, 참석자 모두의 얼굴에 만개한 ‘살프슴’(미소)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느 학부형 막걸리 한잔 권하면서 맞잡은 옹이지고 거친 그 손길의 따스함이 아직도 여전하다.
김정기/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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