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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인권중심 신축새봄 / 정민석

등록 2020-12-28 17:01수정 2020-12-29 02:41

정민석 |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여행업에 종사하는 지인이 무급휴직으로 쉬고 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자 일거리도 사라졌다. 정부에서 주던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금도 끊겼다. 최근에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대출도 받았다. 인권단체 후원도 중단했다. 주민센터에서 소개하는 일거리라도 해보려 했지만, 4대 보험이 유지되고 있어 쉽지가 않았다. 몇개월 뒤엔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러다 정말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루하루 불안감만 계속 쌓이고 있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위기는 더 빨리 찾아왔을 것이다. 재난지원금 이외에 피부에 와닿는 별다른 지원 대책이 없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은 혼자 감당해야만 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2020년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한해였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고 우리 사회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지만, 바이러스는 영리하게도 이들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미 마음의 면역까지 망가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방역망을 뚫기 쉬웠을 것이다. 시설에 갇힌 장애인들, 코로나보다 배고픔을 더 걱정해야 했던 홈리스들, 마스크 재난지원금에서조차 배제되었던 이주민들, 낙인과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성소수자들, 과밀수용과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감염병에 취약한 수용자들, 폭력과 학대 속에서 고립감을 더 느껴야 했을 아동 청소년들, 거리두기·재택근무는 언감생심, 건강권조차 지키지 못한 물류센터·콜센터 노동자들. 집단감염은 이들을 피해 가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들 대부분은 공공의료에 의존해왔는데,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의 건강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것이 유일하게 이 시기를 버티는 길이 되었다.

또한 개인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되었고, 개인정보는 경쟁하듯 공개되었다. 기침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바이러스가 남겨준 공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고, 감염 전파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개인에게 집요하게 묻도록 하고 있다. 국가가 개인이 지켜야 할 의무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동안 그것을 지킬 수 없는 개개인들은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있고, 심지어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가는 이를 못 본 척하고 있고, 아니 오히려 더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보다 허탈감과 무기력감을 감출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곧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보냈지만, 이제 만나고 있는 사람이 몇명인지 그 수까지 세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프면 죄가 되는 시대를 살면서 밥 한끼 먹는 것도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허락되니 연초에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니었던가. 두꺼운 옷을 챙겨 입어도 마음속까지 파고든 추위는 평범한 일상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태도보다 공감과 연대의 감각을 일깨우고, 문제를 직시하는 질문의 힘을 갖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감염에 노출되기 전 사회적 취약계층에 놓인 위험요인들을 제거할 수는 없는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계속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020년 초반과 비교해봤을 때 출발선이 다르다. 나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준비조차 하지 못했던 그때와 달리 우리는 지난 1년의 경험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는 경험을 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바이러스를 통제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국가에 질문을 하고, 답을 요구한다면 올해와는 다른 2021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을 걸어본다.

인권재단 사람에 방문하면 ‘인권활력, 경자새봄’이라고 적힌 붓글씨 문구가 가장 먼저 맞아준다. 경자년 살아 움직이는 인권의 힘으로 새봄을 맞이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제 “인권중심, 신축새봄”으로 바꿔야겠다. 내 멋대로 해석해본다. 인권이 중심이 되는 사회여야 신축년에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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