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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지금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이원재

등록 2020-12-29 13:26수정 2020-12-30 02:39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면 삶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들을 성찰해 진정한 의미를 찾고, 삶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정말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이번 위협은 개인의 삶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류 전체가 절멸할 수 있다는 사회적, 문명적 위협이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막상 성찰이 시작되는 것은 그야말로 눈앞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인류도 그렇다.

1997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그때 우리나라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뿐 아니라 개혁 담론으로도 뒤덮였다. 우리 경제의 취약성은 그 전에도 여러차례 지적됐었지만, 둑이 무너지고 나서야 재벌개혁 복지개혁 같은 근본적 전환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미국과 유럽을 뒤덮었던 자본주의 개혁 담론도 그랬다. 미국 중산층 수백만명이 집을 빼앗겨 길거리로 내몰리고 글로벌 투자은행이 파산하고 나서야, 자본주의에 대해 나왔던 이전의 많은 경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십년을 풍미하던 시장만능주의는 그때 기세가 꺾였고, 국가가 금융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2020년을 뒤덮은 코로나19 사태는 이전의 어떤 위협보다도 심각하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구축한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나보다는 공동체를, 우리보다는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을 고려하는 성찰을 요구받게 된다.

세계는 그리 움직이고 있다. 주요 국가들은 기후위기 대응 행동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주에게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영을 하겠다고 나선다. 각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정지출을 공격적으로 키우면서 적극적 분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성찰과는 정반대의 흐름도 나타난다. 지금 가진 것에 대한 더 큰 집착과 타인에 대한 더 큰 혐오도 드러난다. 결국 삶이란 찰나이며 그리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절망이 낳은 허무주의처럼 보인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 중 일부도 그렇다.

부동산 투자 열풍은 ‘남는 것은 오직 내 손 안의 재산뿐’이라는 허무주의의 반영이다.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가 지고지순의 가치이고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엉뚱한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만다. 결국 거품으로 끝나고 말 허망한 흐름이다. 따지고 보면 재산이란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맡아 관리하다가 죽고 나면 반납해야 하는 빚에 불과하다.

능력주의도 이런 생각과 연결된다. 시험만능주의는 입시 공정성 시비에다 공공부문 입사 공정성 시비로 이어졌다. 내가 가진 점수와 학벌은 내 재산이고 그래서 영원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나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므로 영원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귀족주의와 통한다. 사람의 성과는 그 시점 그 장소에서 그가 실제로 해내는 일로 평가받는 게 순리다.

우리 세계가 가장 절망의 순간을 맞은 것 같은 지금, 오히려 가장 대담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허무주의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힘을 얻으려면 명확한 해법이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만이 희망을 되살리고 허무주의를 이겨낼 힘을 준다.

지구환경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행동하는 일이 우선이다. 감염병이 오늘 내 생명에 대한 위협이라면, 기후위기는 수십년 뒤 우리 다음 세대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기업의 목적을 변화시키는 해법도 필요하다. 주주를 위한 이윤 극대화를 위해 환경이나 사회적 가치를 희생해도 된다는 과거 경영 원리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돌봄의 가치를 되살리는 해법도 필요하다. 감염병 시대는 우리가 건강을 돌보는 일과 살림을 챙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생산활동이라는 깨달음을 전해주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내는 해법도 필요하다. 디지털 세계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만큼의 세계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기본소득제는 이런 사회를 상징하는 해법이다.

삶을 더 깊이 성찰해야,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에도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이 대담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해법을 찾아가야 할 가장 좋은 시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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