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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종이 폭탄’ 뿌린 미국의 ‘풍선 작전’ / 권혁철

등록 2020-12-29 18:39수정 2020-12-30 11:41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된 1951년 5월, <자유유럽방송>(RFE)이 동유럽을 향해 첫 라디오 방송을 보냈다. 이 방송은 동유럽 출신 망명자들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돈을 대 만든 반소련 선전방송이었다. 소련이 동유럽 사람들이 이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전파 방해를 하자, 그해 8월 미국은 서독 국경 지역에서 ‘철의 장막’ 위로 반소련 전단을 실은 풍선을 날려보냈다. 이 풍선 작전 이름은 ‘자유의 바람’이었다. 1951~56년 미국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에 3억장 이상의 전단을 실은 35만개의 풍선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자유유럽출판사(FEP)가 전단을 뿌렸고 자유유럽방송도 힘을 보탰다.

‘풍선 작전’은 치밀하게 이뤄졌다. 기상학자 2명이 서독 뮌헨의 자유유럽방송 사무실에서 상주했다. 풍선이 서독 국경을 넘어 동유럽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기 위한 기상정보 수집, 기상예보, 기상도 작성, 풍선비행 계획 작성 등이 이들의 임무였다. 이들은 정교한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전단의 종류와 무게, 풍향, 상승 시간, 상승 풍속, 하강 시간, 하강 풍속, 목표까지의 거리 등을 반영한 풍선비행 계획을 짰다.

풍선 날리기에 좋은 날씨가 되면 뮌헨의 기상학자들은 풍선 발사장의 기술감독관에게 연락했다. 기술감독관은 12개 공정으로 나눠 발사장을 가동했다. 먼저 전단의 무게를 정확히 재어 풍선 위에 올려놓으면 이를 포장한 뒤 풍선을 부풀렸고, 운반팀은 풍선을 발사했다. 풍선에는 전단과 책 등을 실었다. 미국은 “수백만개의 진실의 메시지가 철의 장막 너머 풍선으로 날아간다”고 자랑했다.

1953년 12월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서는 반공산주의 정서를 부추기는 기술적 수단으로 풍선을 언급했다. 1953년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했고 1953년 6월 동독 노동자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미국의 주요 과제는 “동유럽 소련 위성국가들 중 소련에 복종하지 않는 정권들의 출현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풍선 전단 살포는 동유럽 주민의 마음을 흔들려는 심리전이었다.

동유럽도 가만있지 않았다. 발끈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대공포로 풍선을 격추했다. 1956년 1월 체코의 한 라디오 뉴스는 “프라하에서 전단을 실은 풍선이 터지면서 14살 소년이 크게 다쳤고 슬로바키아의 한 마을 근처에서 풍선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1956년 1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가 항공기 항행 안전을 위협하고 영토 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1956년 6월 제10차 국제민간항공기구 총회에서 풍선 살포를 금지하는 결의안 채택을 요구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회는 1960년 6월 통제되지 않는 풍선 비행 관련 각 회원국의 조치 필요성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의 전단 살포는 1950년대 동유럽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단을 적지에 뿌리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2차 대전 때 미군이 유럽에 살포한 전단은 80억장이라고 한다. 미국은 1950~53년 한국전쟁 3년 동안 40억장의 전단을 한반도에 뿌렸다. 전쟁 때 미국은 군사조직을 갖추고 작전 형태로 전단을 살포했다.

미국의 전단 살포는 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전쟁은 적의 몸뿐만 아니라 생각과도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전단은 ‘종이 폭탄'이었다. 전단 살포는 대표적인 심리전 수단이다. 심리전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미국의 일부 인사들이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심리전이 아니라 인권 활동이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balloon, operation, propaganda, CIA 같은 검색어로 검색을 권한다. 미국이 냉전 때 동유럽뿐만 아니라 쿠바, 니카라과 등에서 뒷돈을 대서 벌인 다양한 ‘풍선 작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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