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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이익공유제 10년의 잔혹사, 이젠 끝내야 / 홍장표

등록 2021-02-01 13:31수정 2021-02-02 02:10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로 재점화된 이익공유제는 지난 10년 동안 논란이 벌어진 사안이다. 이명박 정부의 초과이익공유제, 박근혜 정부의 협력이익배분제, 문재인 정부의 협력이익공유제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논란은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이념공방이 벌어졌고, ‘반시장’이라는 주홍글씨 새기기가 뒤따랐다.

논란의 시작은 2011년 이명박 정부 때다. 당시 삼성과 현대 같은 대기업의 이익이 급증하여 직원들에게는 수백%의 상여금이 지급되었지만, 이에 기여한 협력회사들은 소외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중소 협력사와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 그러자 대기업에서는 주주권을 침해하는 반시장적 발상이라고 일제히 공격했다. 이건희 회장도 “초과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제도인지, 공산주의제도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실무위를 구성하여 집중 논의했고, 필자도 여기에 참여했다. 국내외 이익공유 사례를 수집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물색했다. 그리고 협력프로젝트의 이익을 사전 계약에 따라 나누는 협력이익공유제를 제안했고, 대기업 측도 ‘협력이익배분제’라는 명칭으로 최종 합의했다. 이런 위원회의 합의사항을 근거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제출되었다. 그 후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에서도 수많은 입법 발의안이 나왔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함께 같은 배를 탄 기업들이 사전에 규칙을 정해 이익을 나누는 제도로 시장경제의 꽃인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처음 나왔다. 영화 제작사, 투자자, 배우 등이 러닝 개런티라는 이름으로 이익을 나누었다. 그 후 미국, 영국 등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 정보기술(IT), 유통, 플랫폼 등 다양한 협력사업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국내에서도 시행 중인 기업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협력사들에도 매년 인센티브로 수백억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2015년부터 임직원 임금인상분을 협력사와 나누는 임금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기업들이 이미 자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협력이익공유제 법안도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익을 나누라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여당이 제기한 코로나 이익공유제는 아이티, 플랫폼, 은행 등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기업 이익의 일부를 피해 지원에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피해 구제를 위해 자발적 기부로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주주권 침해와 반시장이라는 해묵은 색깔 논란이 재연되었다. 하지만 수혜 이익을 피해 지원에 활용하자는 제안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그 전 박근혜 정부의 무역이득공유제가 있었다. 무역이득공유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으로 이득을 얻는 기업의 이익을 농어민의 피해 지원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1조원 목표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조성에 들어갔다. 기업의 자발적 기부에 의존했고, 정부는 참여를 독려하는 데 그쳤다. 당시 이념논쟁이 벌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코로나19 전염병으로부터 공동체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코로나19 재난 구제와 불평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책무이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기업이 출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역이득공유제처럼 기업의 선의에만 맡길 일은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적기금을 조성해 기업을 살렸다.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때 국공채 발행으로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위기에 빠진 은행을 살렸다. 코로나 위기에서도 정부는 40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기간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는 ‘사람’을 살리는 사회연대기금을 만들 차례다. 사회연대기금은 서민금융계정, 복권기금 같은 공적기금, 국공채 발행 등 정부가 맡아야 한다. 여기에 사회적 가치 경영과 노동연대를 추구하는 노사가 동참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가치사슬 내부에서는 협력이익공유로, 가치사슬 외부 공동체의 피해 구제는 노사정 사회연대기금으로 코로나 불평등 해소의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시장의 상생은 민간이, 공동체 상생은 정부가 맡으면 된다. 이념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10년 동안의 이익공유제 잔혹사, 이젠 끝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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