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나는 정책평가를 주업으로 하는 실증 경제학자이다. 연구실에 출근하면 전날 돌려놓았던 코드의 결과를 확인하고, 오늘 분석해야 할 주제를 위해 코딩을 시작한다. 지저분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좋도록 전처리를 하고, 모형을 추정하고, 추정된 결과를 정리하기도 한다. 결과가 경제학적인 직관, 일반적인 상식, 거시 자료와 부합하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지만, 경험상 그런 연구는 드물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했던 상식과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면 다행이다. 분석자가 ‘세상은 이럴 거야’라는 연구 가설을 세우지만 실제 그 가설을 데이터가 입증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뻔해 보이는 관계도 데이터로 검증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 2월5일 한국경제학회에서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지급되었던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성과 지역화폐의 역할에 대한 여러 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번처럼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수의 연구가 발표되는 것은 드문 경우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단일 세션에 130명 가까운 참여자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발표 결과에 관심이 모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전국민에게 지급된 최초의 보편적 소득이전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정부가 국민에게 소득을 이전해주었을 때 가계 소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것은 정책의 효과성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정책은 자연과학의 실험은 아니지만 일종의 자연실험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이 가능해졌다.
예상하겠지만, 발표 결과는 연구를 수행한 경제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연구자들이 사용한 자료, 모형, 분석 기간에 따라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달랐다. 연구 수행 기관의 입장이 반영되어 보이는 결과도 있었지만, 연구 결과가 한자리에 모이니 최소한 몇 가지 점에서는 합의된 결과에 이르기 시작한 것 같다.
먼저, 가계에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중 30%에서 70% 정도가 소비에 사용된 것 같다는 결과이다. 4인 가족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다 썼는데, 왜 경제학자들은 그중 일부는 소비되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일까? 그건 재난지원금이 가계가 원래 하던 소비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원래 소비하려던 것을 재난지원금 70만원으로 치렀다면, 100만원을 다 썼다고 해도 추가적인 소비효과는 30만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대체 현상은 일반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경제학자들은 소비대체 현상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데이터를 통해서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소득지원 정책을 시행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견된다. 규모의 차이일 뿐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두번째 합의점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지원했을 경우 소비효과가 좀 더 크다는 것이다. 차입제약에 처한 가구, 즉 소득이 줄지만 돈을 빌릴 데가 없는 가구에 지원을 해주었을 경우 소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지원이 되었을 때 좀 더 효과적이며 효율적일 수 있다. 선별이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지난해 4월과 다르게 개인사업자의 종합소득세 신고, 근로소득자의 연말정산, 더 나아가 카드 매출과 같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요즘 같은 빅데이터의 시기에 선별하고자만 하면 선별이 불가능하지 않다.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의 경우 하위 50%를 목표로 하였고, 선별시간은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책 결정자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이지 정보 인프라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돌려 정부 정책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보고하면 정책 당국자들이 화를 내고 불신하는 게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이번 재난지원금 효과 분석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단순한 통계에서 보이는 것과 다른 결과가 나와 믿지 못하겠다는 비판은 반대로 단순한 통계분석이 가성적(겉보기엔 그럴듯하나 논리적 틈이 많음)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것은 데이터 과학의 기본 덕목이기도 하다. 데이터에 숨어 있는 일말의 진실을 찾고 좀 더 나은 정책 대안을 제안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데이터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