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곤ㅣ제천간디학교 교장
2021년 8월 영국의 서머힐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서머힐>을 읽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던 때가 36년 전 사범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봄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한 대안학교의 교장 노릇을 맡고 있다. 현장에서 어려움 겪을 때마다 틈틈이 <서머힐>을 펼쳐 들고 설립자 A. S. 닐의 목소리를 더듬는다.
서머힐은 잉글랜드 동부 레이스턴이라는 작은 읍 외곽에 자리한 기숙형 사립 대안학교다. 6~16세 학생 80명 내외가 재학 중이며,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는 행복한 자치공동체 형태로 운영한다. 서머힐의 실천은 세계 여러 대안학교들의 설립과 운영에 깊은 영감을 던져주었다.
서머힐은 1990년대 한국 대안교육 형성기부터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학생과 교사가 1표씩 동등하게 투표하는 학교 총회, 규칙 제정과 개정권을 갖는 학생자치, 시험과 경쟁이 없으며 학생이 수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 등이 대표 사례다. 이런 특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은 내 자유다’라는 원리로 집약된다.
서머힐의 특성은 학교 내 ‘제도’로서 비교적 손쉽게 우리 시야로 들어온다. 다만 그것을 작동시키는 원리라 할 닐의 ‘아동관’이 여전히 내게 숙제로 남는다. 닐에 따르면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본성이 슬기롭고 실제적이다. 만약 어른들이 아이의 본성 발현을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면 아이는 자기가 이를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성장해 나갈 것이다. 닐은 끝까지 믿었다. 어린이는 결코 악하지 않고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 지점이 어렵다. 대안학교 현장을 지키다 보면 자꾸 ‘선생 본능’이 작동한다. 내가 조금만 도움을 주면 아이가 더 바람직하게 성장할 것 같다.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아이의 내면 의식이 깨어날 것인가. 기다림의 끝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바라본다.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본성 없이 그냥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난 후 어떤 영향이 백지에 더 많이 작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변화되는 것 같다. 선생인 나는 어떻게 하든 아이에게 더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도덕적 강박관념이 잇따른다.
경험의 축적만 가지고서 교육적 개념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와 사회, 교육제도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된 아이의 본성을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닐은 ‘사고실험’을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신념을 완성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논지를 읽어보면 자신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본성론을 입증한다.
‘심심해서 어쩔 줄 모를 때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들면 몇 권씩 연이어 읽었다. 그러다 책 읽기가 시들해지면 다른 것을 찾아 나섰다.’ 서머힐에서 9년 재학했던 채은씨는 자신의 성장기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심심했던 탓에 책 읽기에 이어 글쓰기, 피아노 연주, 테니스, 연극까지 서머힐에서 계속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심심함은 중요하다. 별걸 다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실제에서 선함을 실행하려는 속성, 스스로 마음 내어 무엇인가 하려는 자발성이 붙박여 있다. 이런 본성을 긍정할 때 진정한 성장이 따른다. 내가 가진 바람이나 욕구들은 괜찮은 것이고, 내 삶의 과정에서 실현해도 되는 것이라 믿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간다. 칼 로저스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일은 유기체 수준에서 존재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느낌이나 성향들에 대해 신뢰하고, 그에 대한 애정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서머힐을 통한 닐의 교육 실천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학생 개인의 교육적 성공을 위해 ‘무엇을 가장 적극적으로 안 할 것인가’를 사유해 보라 권한다. 창의력도 국가 경쟁력의 한 항목으로 측정되는 시대다. 경쟁교육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느라 아이들의 원형 탈모 증상이 늘어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닐의 소극적 교육론은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과격한(래디컬) 언명으로, 한국의 현 교육체제에 깊은 울림을 준다. (서머힐 100주년 기념 관련 행사 참조는 www.100yearsofsummerhill.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