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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기재부와 검찰이 닮았다 / 이철희

등록 2021-02-15 13:14수정 2021-02-16 11:40

이철희 ㅣ 지식디자인연구소장

“재정상의 민주화란 나라살림의 민주적 운용을 뜻하는 것으로 의회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 하겠습니다. 근대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재정상의 민주주의 확립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도 한낱 허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88년 가을, 재정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최임환 회장이 한 말이다. 30여년이 흐른 2021년, 이 재정 민주화는 얼마나 이뤄졌을까?

우리나라의 재정은 건전하고 튼실하다. 그런데 이 재정 건전성은 오랫동안 쓸데 안 써서 확보된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자영업의 규모는 재정을 통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부재와 노후 복지 부담의 사인화에 따른 결과다. 취약한 복지도 재정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공공사회복지지출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11%)에 불과하다. 국민부담률 대비로 보면 오이시디 중에서 꼴찌다. 외환위기 때 금융계와 기업을 위해 160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코로나 위기 때문에 40조원이 넘는 재정을 기간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의 손실 보상이나 보편적 재난 지원을 얘기할 때는 어김없이 재정을 앞세워 손사래를 친다. 명백한 불공정이고 차별이다. 이를 시정하는 것이 재정 민주화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재정의 정보를 알고 나아가 그 편성 및 용도에 관여하는 권리’인 재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따라서 재정 민주화는 주권을 대리하는 의회에 의한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의회는 심의를 넘어 재정을 어디에 쓸지 등 편성에도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재정이 보통사람들의 삶이나 사회경제적 안정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재정구조를 서민 생활, 즉 민생의 논리에 의거하여 전면 재편성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기획재정부가 건전성을 명분으로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검찰이 정의를 앞세워 수사·기소권을 자의적으로 남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심지어 검찰과 기재부는 닮은꼴같이 독점적 권한을 근거로 정치에도 개입한다. 이들이 기소권과 재정권을 독점하면서 정부 안의 정부(deep state)처럼 군림하는 구조·관행은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로서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한다.

코로나 위기에서도 우리의 재정은 서민에게 무심하고 인색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으로 선진국들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지원한 비율은 국내총생산의 많게는 16.7%(미국)에서 적게는 14.6%(캐나다)에 이른다. 우리는 고작 3.4%에 불과하다. 지출액으로 보면, 미국이 4조130억달러, 일본 2조2110억달러, 독일 1조4720억달러, 영국 8870억달러, 이탈리아가 7900억달러인 데 반해 우리는 겨우 2220억달러에 그친다. 위기 대응에 따른 재정결손에선 우리가 국내총생산 대비 4.18%인 데 반해 방역 모범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는 9.14%, 12.66%다. 방역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재정이 나서서 사회적으로 부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얘기다.

낡은 프레임도 문제다. 싫든 좋든 의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데, 국회가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에 대해 말하면 돈 퍼주는 나쁜 짓이 된다. 기획재정부는 알뜰하게 국민 세금을 아끼는 착한 곳간지기가 된다. ‘나쁜 정치, 착한 행정’은 왜곡된 프레임이다. 이는, 정치의 개입을 위축시킴으로써 편재한 불평등과 차별을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재정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주도하고 통제해야 한다. 일반 국민의 개입도 제도적으로 열어줘야 한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리의 참뜻도 이것이다. 국민의 재정주권을 보장하는 재정 민주화가 이뤄져야 복지를 위한 증세도 가능해진다.

최임환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성장 위주의 자본의 논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서민대중, 나아가 노동층의 논리에도 깊은 배려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들 다양한 이익집단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때 비로소 재정의 민주화는 구현되는 것입니다.” 재정이 국민,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돌보는 것이 바로 재정의 민주적 개혁이다. 이제 ‘안’ 쓰는 재정이 아니라 ‘잘’ 쓰는 재정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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