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들의 형사사건 변호를 맡고 있다.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였고, 이후 현역 복무의 두배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 합숙하는 대체복무가 입법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2018년 최고법원 판례 변경 전 병역거부로 기소가 된 이들에 대한 재판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이전까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징역 1년6개월’ 정찰제 재판이 대부분이었다. 2018년 이후에는 양심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고법원이 병역거부를 ‘권리’라고 하였으니,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인 ‘양심’이 존재하는지를 심사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고안한 양심 감별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웹하드 사실조회. 10여개의 웹하드에 가입을 했는지, 가입을 했다면 어떤 동영상을 내려받았는지 조회한다. 폭력물과 음란물을 시청했는지를 조회하기 위해서란다. 다음으로는 게임회사 사실조회. 군사작전과 흡사한 1인칭 슈팅 게임을 비롯하여 어떤 게임을 하였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여기에 병역거부자가 자신의 양심을 외부로 표현하는 종교·사회활동 등을 했다고 진술하면, 그 장소를 특정하라고 하여 1년치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대조한다.
개인 인터넷 이용 내역, 위치정보 등을 뒤지고 나면 21세기판 ‘십자가 밟기’가 피고인 신문 절차를 통해 진행된다. ‘5·18항쟁 시민들의 무장저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80년 광주로 돌아간다면 총을 잡겠는가?’, ‘일제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할 것인가?’, ‘가족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질문을 받은 병역거부자들은 무죄를 받기 위한 정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모든 질문에 ‘아니요, 어떠한 조건에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변하면 된다. 그러나 이들은 고뇌하며 답변한다. “총을 쥐고 광주도청에 남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저는 무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일무장투쟁을 비난하거나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제 가족이 제 눈앞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면, 사실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기에 그 순간 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진지하고, 무엇보다 솔직한 답변은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다. 법원은 이들의 답변을 근거로 이들의 반전·평화주의 양심이 가변적이고 일관되지 못하다고 판단해버린다. 현재까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현역 병역거부자 중 무죄를 받은 경우는 1건에 불과하고, 이 무죄 역시 현재 상고심 계속 중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2018년 병역거부권 인정은 큰 전진이었지만, 이후 양심 판정 절차가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되었고, 그 절차는 현재 매우 고통스럽게 진행 중이다.
한 재판에서 검사가 제출한 피고인 신문 질문 중 일부다. “피고인은 일본군이 성노예를 삼기 위해 피고인의 지인 여성을 데려갈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요”, “피고인이 주장하는 평화 방법으로 제2의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요”, “결국 제대로 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해 대한민국에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닌가요”. 법정에서 이 질문지를 받고 할 말을 잃었다.
양심을 빙자하여 특혜를 누리기 위한 이들을 걸러내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현역 두배 기간, 교도소 합숙 복무인 대체복무가 과연 특혜인지 차별(처벌)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일정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과연 현재와 같은 먼지털기식 인터넷 사용 내역 조회와 모욕적인 질문을 통해 양심을 심사해야만 한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법을 전혀 찾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심사가 일반화된다면 모든 시민의 권리인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병역거부권 인정 이후, 수많은 제도와 관행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시될 것이다. 국가가 이처럼 모욕적인 방식으로 양심을 심사하고 이 심사 방식이 일반화된다면, 과연 누가 자신의 양심을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