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소위 사법농단 관련 재판인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고합187호 판결이 최근 선고되었습니다.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때로부터 4년이 흘렀습니다. 의혹은 법원행정처와 정권 사이에 광범위한 재판 정보 전달 및 의견 교환이 있었고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 이루어졌다는 법원의 자체 조사 및 검찰의 수사 결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번 판결은 소위 사법농단 의혹 중 일부 핵심 내용을 담고 있는 재판의 판결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4년간 법원이 얼마나 자성하고 변화하였는지 고찰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재판에서 어떤 사실이 인정되었는지 공개하고 반성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따라서 판결에서 인정된 주요 사실관계를 요약하여 기록하여 거듭 알리고, 이를 칼럼의 요지로 삼고자 합니다.(※다만, 심급의 변화에 따라 인정된 사실관계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헌법재판소에 파견된 판사들을 이용하여, 법원의 재판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중요 사건들에 대한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내용 등 내부 정보를 비밀리에 취득하였다. (참고: 사건 평의 내용 등은 비공개 정보다.)
2. 1심 재판부가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하여 결정문을 등록하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위 1심 재판부의 재판장에게 연락하여 위 결정문을 직권취소(삭제)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문을 재등록하도록 유도하였다. (참고: 등록한 위헌제청결정문의 직권취소는 법리상 불가능하다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자문이 선행된 바 있다.)
3.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결정 및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다.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의원직 상실 결정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행정법원에, 통진당 지방의회의원들은 의원직 지위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전주지법과 광주지법에 각각 제기했다. 법원행정처는,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은 상실되어야 하나 통진당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릴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이 갖기 때문에 ‘소각하’가 아닌 ‘청구기각’이 적절하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였다.
―법원행정처는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이 제기된 행정법원의 수석부장판사에게 위 문건을 담당 1심 재판부에 전달하라고 요청하였다. 수석부장판사는 문건을 전달하는 대신 말로 그 취지를 순화하여 전달하였다. 법원행정처는 2심 재판부 재판장에게는 위 문건을 직접 건넸다.
―법원행정처는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을 담당하는 전주지법 1심 재판부 재판장에게 의원의 자격상실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내용으로 판결 선고할 것을 권고했다. 법원행정처는 2심 재판부 재판장에게도 같은 취지의 권고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전주지법 1심 재판부가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에서 의원직이 유지된다는 취지의 ‘청구인용’ 판결을 하자 청와대가 불쾌해하며 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하였다. 그 후 법원행정처는 별개의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을 담당하는 광주지법 1심 재판부 재판장에게, 통진당 지방의회의원의 자격상실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되 지방의회의원의 자격은 상실된 것으로 ‘청구기각’ 판결을 선고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 결과 ‘청구인용’을 생각하고 있던 재판장은 선고를 연기하였고 재판부가 변경되었다. 법원행정처는 변경된 재판부 재판장에게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에 대하여 ‘청구기각’으로 판결 선고할 것을 재차 권고하였다.
(참고: 법원행정처가 위 세 법원(행정법원, 전주지법, 광주지법)에서 진행된 각 행정소송에 ‘권고’ 형식으로 개입하였으나 해당 재판장들이 법원행정처의 권고를 따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판결 이유가 수회 수정되거나 판결 선고가 연기되는 등의 영향이 작용하기도 하였다.)
4.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이 상고법원의 도입을 반대하고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사법행정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킬 방법을 논의하였고 그 조치로서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실행하였다.
5. 법원행정처는 국회의원들이 기소되고 소속 정당으로부터 재판진행에 대한 문의를 받게 되자 위 국회의원들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로부터 향후 재판진행 계획과 유무죄 심증 등을 파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