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집권여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거세다. 서울시장 여야 후보의 지지율은 여러 조사에서 20% 넘는 차이가 난다. 2030세대의 야당 지지는 60%에 육박하고, 일부 조사에선 40대도 야당 지지가 더 많다. 촛불과 탄핵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불과 4년 만에 보수 우위가 복구된 이 사건의 역사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20대가 경험이 없고 생각이 짧아 보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오만한 착각이다. 20대는 진보층이 보수층보다 많을 뿐 아니라, 20대 중도와 보수의 다수는 그동안 보수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던 그들이 지금, 싫은 야당을 지지해서 여당에 경고하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아야 한다.
3040세대의 이탈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지난 4년간 확고한 여당 지지층이었다. 그중 다수는 ‘88만원 세대’로서 1997년 금융위기를 청소년기에 겪으며 자본주의의 불지옥을 보고도 ‘사람중심, 노동존중, 포용복지’라는 선한 가치를 믿어준 이들이다. 그들이 지금 떠나고 있다. 그 환멸과 울분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여당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정부는 전쟁 위기를 극복했고, 감염병을 막았으며, 복지 확대에 노력했다. 게다가 보수정치에도 많은 특혜, 불법 의혹이 있는데 ‘묻지마 심판’의 분위기는 부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지금 성난 민심의 본질은 보수화가 아니라 배신감이라는 사실 말이다. 많은 사람이 그동안 지지해줬고 기다려줬다. 이제 인내가 끝났다. 대체 무엇이 잘못됐나?
첫째, 배타적·독선적인 도덕정치의 문제다. 집권세력이 정의라고 믿는 바에 따라 개혁목표를 정하고 관철하는 식의 정치 말이다. 이것을 도덕적 우월감이나 오만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핵심은 품성이나 심리가 아니라, 소수가 ‘정의’를 독점하고 다수를 배제하거나 추종자로 만드는 거버넌스다.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발언하며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정치가 아니라 청와대, 당사, 청사 안의 정치다.
이 문제는 특히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뒤에 더 심각해졌다. 코로나로 고용과 소득이 곤두박질치고 미친 집값만 치솟는 동안에 정치권은 검찰개혁에만 매달렸다. 장관 청문회에 반대 여론이 커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했다. 그것이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독선의 정치는 권력을 계속 축소시켰다. 권력이란 국회 의석수가 아니라, 다수가 함께하는 데서 생겨나는 행위 능력이기 때문이다.
둘째, 진보의 권력화에 따른 폐해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보수가 권력을 독점했지만 민주화 이후 진보의 권력이 확대됐다. 특히 현 정부에서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과 진보지식인, 시민사회 리더들이 권력 중심에 대거 진입했다. 문제는 이런 권력화 자체가 아니라, 권력의 특권화다.
진보주의는 힘없고 가난한 자, 차별받는 자의 편에 서는 이념이다. 그래서 진보의 권력은 권력자로서의 자신과 불화하는 권력이어야 한다. ‘진보는 권세 있으면 안 되냐’는 탈도덕론으로 짐을 내려놓으면 진보 지지층과 이반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상류층, 특권층의 모습을 계속 노출시켰다. 그처럼 세속적인 장면에 엄숙한 진보의 도덕이 자막으로 뜨면, 이 절대적 부조화가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셋째, 민주당의 정체성 혼란이 정치적 대가를 초래한다. 민주당은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표방했고 중산층·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약속했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은 도덕적 책임이자 현실정치의 숙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유권자의 이념과 계급은 점점 더 중요한 정치균열의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집이 없고 재산이 적은 계층이 진보를 더 지지하고, 소득 하위·중간 계층이 복지를 더 지지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누구를 위해,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부동산 폭등을 방치했고, 노동과 복지의 대개혁보다 신산업, 신기술, 신공항에 몰두했다. 배신의 정치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노무현, 용산참사, 세월호, 백남기, 그 많은 슬픔으로 응어리졌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도돌이표 역사는 그저 비극일 것이다. 더 두려운 미래는 우리 사회의 가치들에 대한 환멸과 불신, 냉소가 가득한 시대의 도래다. 그런 미래를 막을 수 있을까? 정치의 약속을 되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