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전쟁이나 쿠데타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역사의 종언’을 예견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폭력의 역사를 마감 짓는 역사의 종착역이었다. 오래전에 총성이 사라진 아시아는 후쿠야마의 역사관을 입증하는 문명의 땅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다. 1980년대 이후로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사라지고 가장 역동적인 발전을 성취하였다. 중국 시진핑이 작년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치와 만나 화기애애한 정상회담을 개최한 올해 1월17일, 미얀마에서 정변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조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그때 누군가가 보름 후의 군사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했다면 “자다가 웬 봉창 뜯는 소리냐”며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월이 되자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이후에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두달여가 지난 지금, 미얀마는 피로 물들고 있다. 이렇게 자국민을 살육하고도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 따위는 대놓고 무시하는 기고만장한 군부가 출현할 줄 과연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얀마 사태가 악화되어 내전이 발생하게 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시리아가 그랬다. 2010년에 시리아에서는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을 뿐이다. 평화적인 민주화 시위가 유혈로 진압되자 이듬해에 내전으로 악화되고 대규모 난민이 속출하였다. 피로 물든 시리아에서 역사의 종언은 없었다. 지금의 미얀마가 아시아의 시리아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시리아 사태가 악화된 배경에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기 짝이 없는 국제기구가 있었다. 미국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실효성 없는 경제제재만 발표하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안보리는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결의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지금 미얀마의 양상은 시리아와 거의 흡사하다. 국제사회에 대한 미얀마 시민들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다면 시민은 무장을 선택할 것이다. 이미 시민 지도부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공동의 군대를 창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군부는 소수민족인 카렌족 마을을 공습하여 1만명이 집을 잃었고, 그중 일부는 주변 방글라데시와 타이와 인접한 국경을 넘은 난민이 되었다.
이것이 내전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미얀마 군부는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한 인근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를 자극하게 된다. 미얀마 사태가 동남아시아 소수민족 문제를 자극하면 내전은 국제화된다. 그 불쏘시개가 사방에 널려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최근 군비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섣불리 강대국이 내전에 물리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아시아는 유럽과 같은 집단 안전보장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공통의 가치도 발견하기 어렵다. 가장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하기 곤란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믈라카 해협이 불안해지고 무역국가인 한국과 일본은 해상 교통로가 위협을 받게 된다. 동아시아 정치와 경제를 뒤흔들 ‘미얀마 나비효과’는 실존하는 위협이다. 미얀마 사태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국내 거주하는 미얀마인 2만5천명도 순식간에 난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 비용,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국제사회는 ‘미얀마 평화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과거 동남아 지진해일 피해가 발생하자 미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와 쿼드 회의를 만든 바 있다. 지금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중국이 미얀마 평화회의에 합의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한다. 그 테이블에 미얀마 군부가 나오도록 압박하는 예방외교를 전개하면 사태 악화를 막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만일 미얀마 군부가 응하지 않는다면 강한 압박과 제재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성취한 아시아 유일의 국가다. 지금까지 동남아 국가들에 휴대폰과 무기를 수출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와 번영을 수출해야 한다. 광주의 5·18을 미얀마 해방으로 잇는 오작교가 평화회의다. 시민혁명으로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서 미얀마 평화회의를 제안할 적임자 아닌가. 이게 바로 중견 국가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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