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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기충족적 예언’일 뿐이다

등록 2021-04-05 16:26수정 2021-04-06 02:36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중 봉쇄’를 해야 한다면 동아시아 해역에 집중해 세심한 분쟁 관리를 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실체 없이 미국의 군사력을 과잉 전개하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바닷길 분쟁’으로 가는 길이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국제 물류에 혼란을 준 최근 며칠간 수에즈 운하 봉쇄 사태는 미-중 대결의 음울한 시나리오를 강화했다.

2007년 이후 다시 조여드는 미국의 봉쇄에 직면한 중국은 남중국해를 내해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대중국 바다 봉쇄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중동에서 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해역에서 불안과 대결의 증폭으로 치달을 수 있다.

해로를 통한 수송 비용은 육로에 비해 30분의 1에서 10분의 1까지 저렴하다. 전체 물류의 90% 이상이 지금도 해로를 이용한다. 미국의 미시시피강 수역에서 항행 가능한 총길이는 3000㎞에 달한다. 세계에서 항행 가능한 내륙 수로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 있다. 내륙 깊숙이까지 항행 가능한 수로로 미국 전역의 생산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바다로도 직접 이어지면서 미국은 단번에 최대 생산력을 갖췄다. 반면 소련은 드넓은 국토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 봉쇄돼, 경제의 동맥경화가 만성화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전례 없는 바다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를 누려왔다. 미국이 장악한 제해권 덕분이다. 소련은 제해력이 별 볼 일 없는데다, 미국의 제해권 질서를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다시 바다를 둔 다툼을 가시화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중국은 모두에게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제해권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정말로 중국을 봉쇄하는 데 효율적인가? 이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이다. 즉, 그렇게 생각할수록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은 2000년에 인도의 한 해군 장교가 인도양에서 인도와 일본의 해상 안전 협력을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07년 인도를 방문해, “태평양과 인도양은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 짝짓는 동력을 자아내고 있다”며 “지정학적 경계들을 깨는 ‘더 폭넓은 아시아’는 명백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인도·태평양을 연결지었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정학자인 로버트 캐플런이 2009년과 2010년 <포린 어페어스>에 인도양 제해권의 사활적 중요성을 주장한 ‘21세기의 중심 무대’와 중국의 지정학적 야망을 강조한 ‘중국 패권의 지리’라는 글을 발표해, 미국에서 인도·태평양 개념에 불을 질렀다.

인도는 주변 해역의 해상 안전을, 일본은 동아시아 해역에서 중국 세력의 물타기를 의도했는데, 미국은 이를 ‘세계 전략’으로 받은 것이다. 물론 중국이 건국 이후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했으나, 남중국해 환초섬에서 인공 구조물까지 본격적으로 쌓기 시작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귀환’ 전략 발표 이후이다.

중국 등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의 공장으로 커지면서 중동의 석유 등 원자재 해로로서 인도양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해군은 중국이 인도양 연안을 따라서 과다르, 함반토타, 치타공 등의 항구를 장악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채택했다는 중국 위협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주요 항구에서 전용 부두를 만드는 정도를 가지고 마치 군항으로 조차하는 듯이 부풀린 과장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금 대외정책을 재조정하고 있다. 요체는 중동의 비중을 줄이고, 아시아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중동 철군을 추진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도 이란의 긴장으로 중동에서 미 군사력이 한때 9만명까지 치솟았는데, 바이든 행정부 이후 5만명으로 감축됐다. 예멘 내전 개입 중단을 밝혔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도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시 인도양의 다른 쪽을 동아시아와 연계해, 세력권 싸움을 벌일 태세이다. 문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이라고 규정짓는 세력권인 ‘인도’에서 발붙일 거점이 별로 없어서, 의도하는 세력권을 만들려면 엄청난 개입과 자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항모가 상주하거나 적어도 수시로 배치돼야만, 적어도 인도도 대중 봉쇄에 호응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 봉쇄 개념 자체가 올바른지도 의문이나, 대중 봉쇄를 해야 한다면 동아시아 해역에 집중하며 세심한 분쟁 관리를 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실체 없이 미국의 군사력을 과잉 전개하는 인상을 줘 상대로 하여금 또 다른 대응을 부르게 할 우려가 크다. 이는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바닷길 분쟁’으로 가는 길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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