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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두 사람만의 나라 / 손아람

등록 2021-04-28 14:22수정 2021-04-29 02:40

손아람 ㅣ 작가

“왜 결혼하지 않아요?” 동거 생활을 하면서 무수히 받았던 질문이다. “왜 결혼해야 하는데요?”라고 되받으며 웃고 넘어간다. “혹시 비혼주의자세요?”라는 질문은 좀 더 어렵다. 사전에 쓰인 대로라면 비혼주의자는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뜻하므로 우리는 틀림없이 비혼주의자가 맞다. 이 정의에 따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혼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납세는 의무이며 위반할 경우 처벌받지만 혼인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론적으로는 한국의 법률 역시 비혼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혼주의자라는 단어를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 비혼주의자세요?”라는 질문은 어김없이 “비혼이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사실 이 질문은 “혼인이라는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모양이군요?”와 같다. 그 맥락이라면 우리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비혼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두 개인의 결합을 넘어 가족 간 결합의 성격을 지닌 제도의 피로를 감수할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뿐이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혼인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 혼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사람만의 나라’를 원했고 혼인이 그 나라의 존속을 위협하는 장치라고 느꼈다. 그게 전부였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정말 당혹스러웠던 순간이 있다. 대만인 여성 작가를 집에 초대했던 때였다. 그녀는 내 또래였고, ‘혼자인 게 좋아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전적으로는 그녀 역시 비혼주의자인 셈이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추궁하면서, 만약 평생 반려를 확신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혼인을 선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려인을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두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라도 당했을 때 응급실에 입회할 수조차 없는 신분이라면, 어떻게 반려인이라 부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조용히 혼인신고라도 해두세요.” 그녀가 권유한 문제를 한동안 고민해 보았다. 혼인신고는 가족 간 결합의 의무에 대한 저지선이 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답변을 준비해야 할 새로운 질문들이 따라올 텐데, 그것은 호기심 어린 제3자가 아닌 친족들이 퍼붓게 될 터였다. “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 “왜 명절에 함께 오지 않아?” “왜 아이를 낳지 않아?” 두 사람만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두 시민은 그런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비혼을 시험하는 두번째 사건은 끔찍했다. 가수 구하라씨가 사망했을 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모가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양 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가족이라 부를 수 없다고 비난할 때,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공포를 느꼈다. 법이 가족의 구성을 일률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 ‘두 사람만의 나라’가 가능하다는 믿음만으로는 결코 법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 구하라씨의 친모가 헌신적으로 부양 의무를 다했더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구하라씨 사건이 있은 뒤 많은 비혼 커플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유언장을 작성하기로 했다. 오로지 법의 폐쇄적인 규정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문서였으므로 내용은 단순했다. “가족법에 따른 집행이 이루어질 경우, 반려인에게도 가족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한다.” 유언장의 내용이 법에 맞설 만큼 충분한지 확신할 수 없어서 가족에게 이해와 존중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함께 썼다. 유언의 효력은 당사자의 사망이 확정되어야만 발생하므로 여전히 빈틈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동생에게 문서 한장을 더 남겼다. 유사시 대리인으로서 내 애인의 권리를 행사해달라고.

비혼은 선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그들을 ‘혼인주의자’라고 부른다. 혼인주의자들은 비혼 출산을 결심한 사유리씨의 방송 출연에 반대하고, 비혼을 포괄하는 가족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저지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혼인주의자들은 비혼의 삶을 비정상이라 공격한다. 비혼주의자들은 유언장을 간직하는 것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틀어막아 놓은 가족법도 죽음의 가능성 앞에는 공평하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비혼자는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다”와 같은 법규가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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