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난 무살람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 인문학부 교수
세계의창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월25일 팔레스타인 선거를 맞으면서 ‘해방의 날’ ‘팔레스타인 결혼 축하연’이라고 환호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팔레스타인은 중동에 민주주의와 선거를 가르치고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98만 유권자들이 축제같은 분위기 속에서 투표소로 몰려갔고, 개표가 시작될 때만 해도 1965년부터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벌여온 집권당 파타가 하마스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모든 예측과 전망, 파타의 낙관론, 팔레스타인의 정치 지형도와 풍경이 모두 뒤집혔다. 다음날 정오 무렵 하마스 지지자들이 서안과 가자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압승을 축하하는 행진을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얻었다.
94년 7월 야세르 아라파트가 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NA)를 세운 뒤부터 파타는 팔레스타인 집권당이었지만, 내부 불화와 부패로 얼룩져 왔다. 2002년 이스라엘의 침략과 요르단강 서안지역 재점령 과정에서 자치정부의 보안기구는 완전히 붕괴됐으며, 대중들의 신뢰를 잃었다. 반면 하마스는 70년대 말부터 가자와 서안 지역에 진료소와 자선조직, 사원과 학교를 건설해 수천명의 헌신적인 지지자들을 얻었다.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이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끔찍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경고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위협을 내정간섭이라고 여겼고, 거센 반미·반이스라엘 역풍이 결국 하마스 지지표로 이어졌다.
승리한 하마스는 파타와 연정을 구성하기를 원하지만 파타는 이를 거절하고 있다. 하마스는 단독정부를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마스가 88년 창설 이래 처음으로 ‘이슬람 사회를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전영역을 이스라엘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슬람저항운동으로부터 실용적 집권당으로 변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의 새로운 현실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정치, 국제정치에 적응해야 한다. 이슬람화 구호와 이데올로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이후 팔레스타인은 예측불가의 상황이다. 파타 내부에서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장한 파타 지지자들은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중앙위원 축출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슬람화’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가 이끄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한다. 이들은 하마스가 이슬람법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학교에서 남녀 분리교육을 주장하고 여성들에게 히잡(이슬람권의 여성 머리두건)을 강요하며, 음주를 금지할지 우려한다.
하마스의 승리는 이스라엘 사회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3월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정치분석가들은 하마스의 승리가 이스라엘 극우세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 등 극우세력들은 하마스 승리라는 ‘충격적 사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이다. 이스라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과의 휴전은 계속하겠다는 하마스 지도부의 성명은 이스라엘의 극단주의자들을 강하게 만들 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앞에는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세속주의자들과 종교적 세력을 화해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유일한 해법이기는 하지만 난제다. 이 화해를 이루지 못한다면 내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드난 무살람/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