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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나와 둘 사이’ 남북기본합의서가 품은 희비극

등록 2021-05-17 13:21수정 2021-05-18 02:06

이제훈의 1991~2021 _03
2018년 2월18일 평창겨울철올림픽에 출전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선수들. 이들이 입은 경기복 가슴팍의 ‘한반도기’와 ‘KOREA’라는 국호는 남과 북이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상호관계 규정의 밝은 면을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물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2월18일 평창겨울철올림픽에 출전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선수들. 이들이 입은 경기복 가슴팍의 ‘한반도기’와 ‘KOREA’라는 국호는 남과 북이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상호관계 규정의 밝은 면을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물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올해로 30돌이 되는 남북의 유엔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는 별개가 아닌 한쌍이다. 유엔 가입은 ‘유엔헌장 준수 의무를 지닌 두 주권국가’라는 남북관계의 국제적 보편성을, 기본합의서는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민족적 특수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유엔 가입으로 확인한 ‘두 주권국가의 병존’이라는 명백한 현실을,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으로 굳이 다시 부인하며 ‘상대 부정’과 ‘적대의식’을 온전히 제거하지 않았다.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여섯 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nomad@hani.co.kr

“남과 북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한 구절이다. 두 세기에 걸친 분단사에 독보적 위상을 지닌 양자 관계 규정이다. 분단 이후 남·북 당국이 남북관계의 성격을 문서 합의 방식으로 공식 규정한 유일무이한 사례다. 남과 북은 유엔 동시·분리 가입(1991년 9월17일)으로 국제법적으로 두개의 주권국가임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지만, 상호관계는 ‘민족 내부 관계’라고 달리 합의·규정했다. 1991년 12월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뒤로 30년 동안 살아 숨 쉬며 남북관계의 안내자 구실을 해왔다.

기본합의서 서문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은 힘이 세다. 남북교류와 관련한 것이라면 당국 관계든 시민 개인의 행보든 예외 없이 압도적 규정력을 발휘한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국외 여행·출장 때 필수 신분증명서인 여권의 발급 주체는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다. 그런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에 가려면 여권은 무용지물이다. 통일부 장관이 발급한 ‘북한 방문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에 따라 북한은 외국으로 간주하지 않아서다. 인천공항·부산항 등을 통해 외국을 오가는 걸 “출국·입국”이라 하는데, 경의선 도라산역과 동해선 고성역을 거쳐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드는 행위는 “출경·입경”이라 한다. 국경이 아닌 남북의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뜻이다. 1998년 11월18일부터 2008년 7월11일까지 금강산에 관광을 다녀온 시민 193만4662명은 기억할 터.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때 여권이 아닌 ‘북한 방문 증명서’로 신분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남북교역은 민족 내부 거래로 여겨 관세를 매기지 않는 과세 정책도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남북교역을 수출입 통계에 넣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고등학생 교복 수요를 책임진 개성공단산 학생복에는 관세가 붙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군사분계선 북녘에 있다. 남쪽 기업 125곳과 북녘 노동자 5만4988명(2015년 12월 기준)이 어우러져, 정식 가동이 시작된 2005년 1월부터 2016년 2월10일 ‘폐쇄’될 때까지 32억3304만달러어치의 상품을 남북협력으로 만들어냈다. 그런데 정부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만 ‘개성공단산=한국산’ 예외 인정이 현실화하지 못했다. 남북은 국제법적으로 엄연히 다른 두개의 주권국가인데 이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이 설득의 논거가 됐다. 남북이 합의만 하면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대회 때 ‘한반도기를 든 단일팀’ 출전이 가능한 건,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지지를 웅변한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바뀐 유일무이한 나라다. 정부 차원의 국제개발협력(ODA)에서 무상 원조는 외교부, 유상 원조는 기획재정부가 주관한다. 하지만 식량 등 대북 지원은 국제개발협력 통계에 넣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남북협력 재원은 국회 심의를 거쳐 ‘남북협력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별도로 조성하며 통일부가 주관한다. 이 또한 북한을 외국으로 대하지 않는 기본합의서 서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역대 정부의 대북 지원 내역을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유무상 원조)에 넣는다면 그 공식 통계치인 국민총소득(GNI) 0.15% 수준(25억4000만달러, 2019년)보다 적잖이 높아질 터다.

이렇듯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은 지난 30년간 남북의 화해·협력 여정에 강력한 안내자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열어온 역사가 이 규정의 전부는 아니다. 남·북 당국이 “통일 지향 특수관계”의 아름다운 면만 존중했다면 지난 30년의 남북관계가 ‘가다 서다’와 ‘뒤로 돌아가’를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되풀이하는 파란만장으로 얼룩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의 ‘어두운 심연’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관계의 뒷덜미를 잡은 역사의 저주를 떨치고 공존·공영의 너른 들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자면 30여년 전 유엔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경과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90년 9월4~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제1차 고위급회담이 열렸을 때 남북은 양자관계 규정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2차 회담에서 양쪽이 내놓은 합의서 초안엔 뒷날 기본합의서 서문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로 이어질 관계 규정이 아예 없었다. 분단사 최초의 양자 관계 규정은, 역설적이게도 유엔 동시·분리 가입을 둘러싼 논란에 젖줄을 대고 있다. 1차 고위급회담 직후 북쪽 제안으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세차례 열린 ‘유엔 가입 문제와 관련한 실무대표접촉’(1990년 9월18일, 10월15일, 11월9일)이 그것이다. 당시 남쪽의 임동원 대표는, ‘하나의 조선론’에 따라 ‘단일 의석 유엔 가입’을 주장한 북쪽에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자는 것은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 조치를 말하며, 어디까지나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통일 지향적 특수관계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기본합의서 서문의 “통일 지향”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개념이 이때 등장했다.

남북은 유엔 가입 직후 열린 4차 고위급회담(1991년 10월22~2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첫날 주고받은 합의문 초안에 각자 염두에 둔 남북관계 규정을 처음으로 담았다. 남쪽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 쌍방 간의 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인정하고”라고, 북쪽은 “북과 남은 …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라고 적었다. 남쪽은 5차 회담 준비접촉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남과 북”으로 바꾸고 “쌍방이 각기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된 모든 의무를 수락한 사실에 유의하며”라는 구절을 추가했다. 북쪽은 “남북관계 문제인데 국제관계 문제는 언급하지 말자”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제연합 회원국·헌장” 따위의 표현을 기본합의서 서문에 명시하는 데 반대했다.

남쪽은 기본합의서 서문에 ‘유엔 동시·분리 가입’의 현실을 반영하려 했고, 북쪽은 극구 반대했다. 결국 남북은 기본합의서 서문의 남북관계 규정 문구를 남쪽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와 북쪽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을 결합·절충하는 방식으로 최종 합의했는데, 거기엔 ‘통일 의지’뿐만 아니라 ‘상대 부정’과 ‘적대의식’에 버무려진 동상이몽이 작용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북한을 권력 실체로는 인정하지만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었다. 우리 헌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국가보안법은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이 감춰온 ‘어두운 심연’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북쪽은 유엔 가입이라는 ‘패배’에도 가장 강력한 통치 이데올로기인 ‘조국통일’의 깃발을 유지하려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기어코 기본합의서 서문에 명기하려 했다. 남쪽을 ‘혁명 대상’으로 적시한, 조선노동당 규약의 “당면 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는 문구는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의 또 다른 ‘어두운 심연’이자 국가보안법의 거울상이다.

올해로 30돌이 되는 남북의 유엔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는 별개가 아닌 한쌍이다. 유엔 가입은 ‘유엔헌장 준수 의무를 지닌 두 주권국가’라는 남북관계의 국제적 보편성을, 기본합의서는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민족적 특수성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유엔 가입으로 확인한 ‘두 주권국가의 병존’이라는 명백한 현실을,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으로 굳이 다시 부인하며 ‘상대 부정’과 ‘적대의식’을 온전히 제거하지 않았다. 서글픈 희비극이다.

2021년 남북의 8천만 시민·인민한테는 분단에 무릎 꿇지 않고 통일 지향 화해·교류·협력이라는 기본합의서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으로 상대를 동등한 주권국가로 인정하기를 회피해온 어두운 과거와 단절해야 할 지난한 과제가 있다.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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