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래 최대 불황에 빠졌다. 전례 없는 재난사태에 선진국들은 재난구제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과감히 풀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케이(K)-방역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재정을 적게 썼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에서는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속도가 가파르니까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 혈세로 마련한 재정이니 꼭 필요한 부분에만 써야 한다는 말이다. 예전에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재정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늘 따랐다. 이번 코로나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을 때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가뭄에 단비였다. 그런데 피해구제가 논의될 때마다 재정당국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국채를 찍어 나랏빚을 무작정 늘리는 식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은 피해가 큰 소상공인에게 선별 지급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원금은 부족했고, 영업 제한으로 입은 손실을 보상해달라는 소상공인들의 요구가 거셌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또 손실보상제 입법을 서두르면 재정건전성을 해친다고 우려했다.
이런 식의 나라살림 걱정에 반론도 만만찮다. 가계가 힘들고 국민이 어려울 때 정부는 재정건전성에만 집착하지 말고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현대화폐이론’에서는 재정적자는 과도한 지출의 증거라는 통념을 뒤집고, 적극적인 화폐 발행으로 시민을 부양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한 재정은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화수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론인 만큼 우리에게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원화는 달러처럼 다른 나라에서 기꺼이 사들이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우리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국채 발행에 나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나라는 국가채무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이 목표는 아니다. 재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어려움을 돌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평상시 재정을 아끼는 것은 어려울 때 쓰기 위해서다. 경제가 회복세를 보여도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여전하고 일자리 회복도 갈 길이 멀다.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자산 불평등도 심해졌다. 써야 할 곳이 많은데 재원이 부족하면 국채도 발행하고 세금도 거두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와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코로나 불평등을 막으려면 누진세를 높이고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4·7 재보궐선거 이전에 이런 흐름이 뚜렷했다. 여권에서는 재난사회연대세와 같은 증세가 불가피하고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기류는 재보선으로 180도 달라졌다. 보선에서 승리한 야당의 지자체 단체장들은 부동산 공시가격을 재조사하고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민심에 놀란 여당은 종부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인하 카드를 꺼냈다. 여야를 막론하고 감세 논의로 흐름이 뒤바뀐 것이다. 공시가격을 동결하고 보유세를 내리면, 가장 큰 수혜자는 부동산 재산이 많은 부유층이다. 하지만 감세가 불평등을 낳고 재정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보도는 별로 없다.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를 인하하고 법인세를 감면하면 재정이 빠듯해진다는 우려의 꼬리표조차 달지 않는다. 서민과 가계를 지원하면 재정 파탄이고, 부자나 기업 감세는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명백한 이중잣대다.
부자 감세가 경제를 회복시키고 세수를 늘린다는 낙수경제학을 믿어 침묵하는 것일까. 부자든 기업이든 감세의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경제학계의 오랜 정설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시절에 초대형 감세가 있었다. 하지만 투자와 고용 효과는 없었고 양극화만 심화시켰다. 부자 감세는 미국 역사상 평화기 최대의 국가채무 누적을 초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의회 연설에서 낙수효과는 작동한 적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불평등을 막고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 계획을 밝혔다. 미국과 세계는 불평등에 맞서는 길로 가는데, 우리는 왜 거꾸로 불평등의 길로 가는가. 제 길로 가야 온 국민이 살고 정치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