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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어떤 소나무 사랑의 끝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1-05-25 14:42수정 2022-04-15 11:17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은주·임형남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느티나무는 참 좋은 나무다. 병해충에도 강하고 목질도 무척 단단하고 좋으며 그늘이 풍성하고 품이 넓다. 그리고 가을 단풍도 멋진,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나무이다. 짧은 시간에 아주 무성하게 잘 자라서 회화나무와 더불어 동네 어귀에 필수적인 정자목의 대표주자이다.

예전 고려 때까지는 느티나무로 지은 집이 많았다고 한다. 부석사 무량수전도 느티나무로 지은 절이다. 이후 조선시대로 접어들며 소나무가 집을 짓는 주요 재목이 되었지만, 사실 소나무 등 침엽수는 목질이 견고하지 않아 집을 지으려면 무척 까다로운 조건을 검토하며 나무를 선정하고 가공하여야 한다.

사람마다 누구나 마음의 안식처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가령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의 길을 걸으며 갈증이 날 때 나무 그늘을 찾듯, 힘이 들거나 머리가 복잡해질 때 나는 느티나무 그늘을 그려본다. 그래서인지 길을 가다가 느티나무가 나타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잠시라도 그늘로 들어가서 나무를 쓸어보기도 하고 풍성한 잎들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얼마 전 경북 고령에 갔다가 특이하게도 느티나무가 두세 그루씩 무리 지어 서로 어깨동무하듯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느티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싼 덕에 태풍이 왔을 때도 그 동네 집은 무탈했다고 하니 그 동네에서는 제대로 안식처를 지킨 기특한 나무다.

나무에 대한 기호를 조사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 벚나무, 단풍나무가 그 뒤를 잇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 사랑은 무척 지극하고 곡진하다. 너무 절절해서 건축할 때 조경수로 멋진 소나무를 비용을 많이 들여 심는데 잘 죽기도 하고, 산림녹화 할 때도 소나무를 너무 많이 심어 산불에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심한 예는 서울의 어느 구청에서 멀쩡한 나무들을 뽑고 대로변 가로수로 심는 걸로 소나무 사랑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가로수는 도시의 미관을 돋보이게 하는 용도도 있지만 그것보다 공기정화 기능과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 열섬 현상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소나무는 병해충에 약하고 공기정화 능력도 뛰어나지 않다. 결정적으로 상록수라 여름에는 그늘이 빈약하고 겨울에 그늘이 져서 눈이 녹지 않아 빙판을 만들어 보행에 지장을 준다. 사랑하는 것은 좋으나 조금은 잘못된 사랑이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그 가치가 생기고 세상에 도움을 줄 것이다.

요즘 차기 대선주자나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발표되고 숫자에 따라 지지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본다. 외양은 멋진데 여름 그늘은 빈약하고 겨울 햇빛을 가리는 소나무보다, 품이 넓고 그늘이 풍성한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새로운 리더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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