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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진실 시대, 진실의 냄새

등록 2021-05-26 13:19수정 2021-05-27 02:40

[세상읽기] 손아람ㅣ작가

영화처럼 잘 연출된 전쟁 장면. 두 배우가 영상 속에 등장한다. 곽도원과 최민식이다. 익숙한 연기톤으로 시건방을 떠는 곽도원을 향해 최민식 역시 익숙한 톤으로 일갈한다.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처럼 진중하게. “얼마든지 덤벼봐라. 만가지 전략으로… 압도해줄 테니!”

최근 출시된 모바일 게임의 텔레비전 광고다. 그런데 이 게임의 유튜브용 광고는 내용과 성격이 텔레비전 광고와 완전히 다르다. 유튜브 광고 속에서 배우들은 경직된 자세로 카메라를 향해 나란히 앉아 있다. 먼저 최민식이 곽도원에게 묻는다. “평소에 게임 하십니까?” “네 뭐… 집에 있을 때 뭐…” “아 그렇습니까…” “일단 (이 게임 광고에) 저하고 선배님이 나오니까요.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최고의 게임 아니겠습니까?” 최민식은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허허허 하고 웃어넘긴다. 영상 끝. 텔레비전 광고는 전통적인 광고 문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돌 가수의 화장품 광고, 운동선수의 스포츠웨어 광고처럼 유명인의 익숙한 이미지를 제품의 신뢰성과 연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유튜브 광고가 노리는 효과는 뭘까? 아마도 ‘진실의 냄새’가 아닐까? 광고에 담긴 메시지를 풀어쓰면 이렇다. “네, 지금 보시는 건 광고입니다.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라 겨우 이 정도 대화밖에는 나눌 수 없죠. 그래도 우리는 최고의 배우들을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돈을 들였으니까요. 그런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요? 이 게임이 뭐 그렇게 엄청나길래?” 같은 게임의 티브이 광고와 유튜브 광고의 차이는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탈진실 시대(post-truth era) 뉴미디어의 진실 구성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의 진원으로 빈번하게 지목되는 유튜브 방송의 시청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역설적으로 진실 혹은 진정성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단어를 꼽자면 단연 ‘팩트’다. 여전히 진실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새 미디어의 시청자는 정보시대 진실의 표상이었던 황금시간대 텔레비전 생방송과 단정한 옷차림의 아나운서, 그가 구사하는 침착하고 정제된 말투를 진실의 증표로서 신뢰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것들은 매체가 제도의 통제와 간섭에 노출되었다는 뜻으로 오히려 진실 접근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한다. 진실의 냄새를 탐지하는 뉴미디어 시청자들의 후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들이 신뢰하는 인플루언서가 대체로 감정의 격앙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때로 비속어가 섞인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선정성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솔직한 태도는 진실을 줄곧 억압해왔던 제도의 압력이 존재한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뉴미디어풍 ‘진실의 냄새’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가 트위터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반감과 동시에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왜 기성 언론이나 정부 공식 문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솔직함을 대통령 개인의 트위터 계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걸까? 지지자들은 미국은 딥스테이트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집단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에게 반기를 든 진실의 전사라는 망상을 이끌어냈다. 관습에 대한 불신이 진실의 정교한 추구보다는 진실 포장의 재규격화로 나타나는 것은 뚜렷한 경향이다. 진실은 딱딱한 목사 대신 산발을 한 구루의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믿는 이 미디어 히피즘은 기성 권력에게 손쉽게 공략당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선을 넘나드는 입담을 뽐내는 정치인과 인플루언서에게 적당 수준의 비하를 곁들인 제품 홍보를 의뢰하는 기업들은 새 시대의 설득법을 시청자들만큼이나 잘 이해하고 있다. 진실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진실의 적이 고정관념과 맹신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진실은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기만의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 된다.” 서구권 인터넷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조지 오웰의 유명한 어록을 곱씹어보자. 이 격언은 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로 진실의 혁명성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 기만은 진실의 혁명적 외관까지 손쉽게 복제한다는 것. 둘째로 조지 오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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