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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저 낮은 민주주의를 기다리며

등록 2021-05-30 13:52수정 2021-05-31 02:10

[세상읽기] 조형근 ㅣ 사회학자

“백골단이다!” 외마디 외침이 울렸다. 사람들이 산동네 비좁은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한참 달리다 보니 산이 나오고 수풀이 펼쳐졌다. 드러누워 가쁜 숨 몰아쉬는데 하늘이 참 푸르렀다. 돌아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1988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서울 사당동, 철거에 맞서는 주민과 대학생들의 연대 집회에 무술유단자로 이뤄진 백골단이 들이닥쳤다. 철거 현장에서 이들의 악명은 특히 높았다. 다친 이야기도 흉흉했다. 다시는 거기 가지 않았다.

아파트값 폭등으로 민심의 분노가 무섭다. 집 한 채에 대한 욕망을 누가 탓하랴, 정당한 분노다. 그런데 나는 큰 분노에 묻힌 목소리 낮은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먼저 지방 이야기. 지난 4월 케이비(KB)부동산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상위 20%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13억5899만원에 달한다. 지방 상위 20%는 3억8470만원, 대략 수도권 하위 40% 수준에 머문다. 하위 20%를 보면 수도권은 2억1024만원, 지방은 6660만원.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이 뜨거운 문제인 건 맞다. 지방은 얼어붙은 채 소멸을 기다린다. 정부는 규제도 풀고 혜택도 주면서 서울·수도권에 공급폭탄을 퍼붓는다고 한다. 수도권 집중을 더 강화할 대책이다.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모르겠다.

더 낮은 이야기도 있다. 쫓겨난 사람들 이야기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발전 서사는 빈민 추방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에 내몰린 사당동, 목동, 상계동 주민 중에는 두번, 세번째 철거된 이들도 적잖았다. 3개월분 생활비나 막 등장한 영구임대주택 입주권 중 하나를 받고 떠나야 했다. 어렵사리 영구임대 입주권을 얻어낸 소수 중에 금선 할머니 가족이 있었다. 사회학자 조은이 1986년 사당동 재개발 지역 현장연구에서 처음 만나 25년간 인연을 이어간 3대 가족이다. 그 사연을 담은 노작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연구자는 말한다. 가난한 가족에게 안정된 주거가 생기면 가난이 얼마나 완화될지 알고 싶었다고. 25년 후의 결론은 부정적이다. 가난은 극복되지 않았고, 절망은 익숙해졌다.

수십 수백 곳에서 할머니 가족 같은 이들이 강제이주되고 버려졌다. 개발 연대 동안 정부의 주택정책은 분양 아파트 공급에 집중됐다. 세금으로 건설자본을 부양하고 중산층에게 자산을 만들어줬으니, 산업정책이자 계급적 사회정책이었다. 그나마 지은 약간의 공공임대주택은 분양 전환됐다. 영구임대주택은 민주화의 압력이 거세진 노태우 정부 때 200만호 건설 계획의 일부로 등장했다. 당초 25만호를 계획했지만, 1990년대 초까지 21만4천호를 지은 후 중단됐다. 그때 지은 게 지금까지 전부다.

민주화 시대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2019년 현재, 정부가 발표한 10년 이상 임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의 수는 136만5천 가구다. 이 중 상당수는 분양 전환되거나, 시세에 가까운 임대료를 내야 한다. 취약계층을 위한 진짜 공공임대는 97만 가구가 못 된다. 여기도 최소한의 보증금은 내야 한다. 그조차 버거운 이들이 옥탑방, 반지하,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처럼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데서 사는데, 227만 가구쯤 된다. 쪽방의 평당 월세는 타워팰리스의 두 배 정도다. “없는 자가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는 말이 실감 난다. 정치권도, 여론도 관심이 없는 이들이다.

그날 사당동에서 나와 금선 할머니 가족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것 같다. 그 후로는 많이 멀어졌다. 나는 외곽이라고는 해도 수도권에 아파트를 가진 자산계급이 됐다. 할머니 가족은 여전히 그 영구임대에 산다. 참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은 잡목 덤불처럼, 서로 연결된 불행들의 연쇄같이 뒤엉켰다. 작은 충격을 세상이 완충해주지 못하니 조금만 삐끗해도 불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구임대주택만으로 가난 극복이 어려운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사실 이들은 평생 권리라곤 가져본 적 없이 없다. 조직화는커녕 아파트단지 임차인대표회의조차 임의단체일 뿐이다. 분양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법적 기구인 것과 대조된다. 중산층 민주주의의 소란 속에 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왜 쫓아냈냐고, 왜 돌아오지 않았냐고 이들이 물어올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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