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가 내렸다 북방한계선을 따라 군락을 이룬 자작나무들이 간신히 열매를 붙들고 있던 때였다 만월이었으나 밤의 깊은 골짜기까지 빛을 뿌리지는 못했다 나는 알몸으로 산속을 떠돌고 있었다 사물들이 수초처럼 흔들렸다 늙은 시간들이 땟물 흐르는 손을 내밀었으나 아무것도 내어줄 것이 없었다 손바닥을 적신 빗...
“열 딸라입니다!” 금강산 관광을 할 때 상점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을 남쪽 관광객이 들으면 금방 알아듣지 못한다. 미국 돈을 남녘에서는 ‘달러’로 적지만 일반적인 발음은 [딸러] 혹은 [딸라]로도 하기에 별 차이가 없는데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십 딸라입니다”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에는 고...
말을 들어 보아 사람됨을 짐작한다. 헤아리고 분별하는 단계다. 분별하는 마음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면서 차별로 이어진다. 말하는 이의 분별·차별 의식이 듣는 이에게 가닿고 반응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두드러진 차별은 제도와 관습으로 이어진다. 제도·관습은 일종의 공인된 차별인 셈이고, 이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