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그는, 죽을 자리를 찾는 사람이었다. 일본군에서 탈출해 임시정부에 닿을 때까지 자그마치 6000리, 백두에서 한라까지 오가고도 남을 먼 길을 걷고 또 걸으며, 그가 찾아 헤맸던 건 “조국을 위해 죽을 자리”였다. 그랬던 장준하였으니,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에게 매서울 수밖에. 일제와 싸우고 유신독재와 싸웠던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 자신과 박정희가 알 것이다. 두개골 부서진 주검을 잠시 눕혔던 ‘검안바위’에 시체처럼 단풍이 내려앉았다. 그의 삶에도, 죽음에도 ‘돌베개’가 함께했다.
노순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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