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둔 2016년 8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청탁금지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과제 설명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가 법령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기 혐의로 구속된 지방 사업가한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간부가 입건된 데 이어, 전·현직 언론인과 경찰 간부까지 동일 인물한테 금품을 받은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나 내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현직 검사가 경찰로부터 사무실 압수수색을 받은 것도 사상 처음이라는데, 금품 수수 사건에 검사·경찰관·언론인이 한 두름으로 엮인 것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들 가운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동훈씨도 들어 있다. 의혹을 받는 죄질이 다들 졸렬해 민망할 지경이다.
최근 인사에서 부부장검사로 강등된 ㅇ부장검사는 사업가 ㄱ씨로부터 값비싼 식품, 시계, 지갑과 현금 수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총경 ㅂ씨도 부적절한 접대를 받아왔다고 한다. 이동훈씨는 조선일보 재직 당시 ㄱ씨한테서 수백만원대의 골프채를 받은 혐의로 입건됐고, <티브이(TV)조선>의 ㅇ앵커는 향응과 함께 두차례 중고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와 ㅇ앵커는 지난해 ㄱ씨의 한 체육단체 회장 취임식에 함께 참석했고, ㅇ앵커는 축사까지 했다. ㄱ씨가 평소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고 다녔다고 하니, 속된 말로 사기꾼의 병풍 노릇을 해준 꼴이다.
이들이 금품을 받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가성과 상관없이 모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 된다. 김영란법은 1회 100만원을 초과하거나 한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1면에 ‘위헌 요소 알면서 통과시킨 ‘김영란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걸 강하게 비판했던 조선일보가 자사 전·현직 기자가 받는 의혹에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30일 대다수 신문이 보도한 이 사건을 조선일보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전봉민 국회의원(부산 수영구)의 아버지가 <문화방송>(MBC) 기자에게 자신과 아들의 의혹을 보도하지 말라며 뒷돈 3천만원을 제안하자 기자가 거절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함께 한 줄기 빛도 보여준 보도였다. 이번 의혹으로 국민들이 금품을 거절하는 언론인과 검찰, 경찰을 예외적이라고 인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소금의 소임을 맡은 자들이 외려 부패의 뒷배 노릇을 한다고 여겨지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이번 사건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