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가짜 수산업자’ 김아무개씨의 전방위 금품 살포 사건이 현직 부장검사, 경찰 간부, 언론인 등의 치부를 드러낸 데 이어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낙마까지 불렀다. 지난 7일 사퇴한 박 특검은 김씨한테서 고급 외제차를 빌려 타고 명절에 대게·과메기 등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이틀 만에 차량을 반납하고 렌트비 250만원을 줬다고 하지만 렌트비 지급 시기는 한참 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단죄하는 역사적 소임을 맡았던 박 특검이 이렇게 잡스런 일로 퇴진하는 것은 개인의 불명예를 넘어 국가적 수치다. 특검을 지지·성원했던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일개 사기꾼의 농간 사건으로 가볍게 다뤄선 안 되는 이유다.
김씨한테서 고급 시계와 자녀 학원비 등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현직 부장검사는 박 특검의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박 특검은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지만, 단순 실수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박 특검은 부패 수사의 상징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였다. 그런 박 특검이 김씨 같은 인물한테서 허투루 금품을 받고 또 후배 검찰 간부에게 소개까지 시켜줬다는 것은 검찰의 고질적인 ‘스폰서 문화’와 윤리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의 스폰서 문화에 대한 감찰 등 조직 진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발본색원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검찰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교도소에서 만난 <월간조선> 기자 출신 송아무개씨의 소개를 고리로 정관계 인맥을 넓혀온 것으로 드러났다. 송씨는 김씨에게 박영수 특검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김무성 전 의원 등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또 이번 사건으로 경질된 포항 남부경찰서장은 주 의원의 소개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을 지낸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동훈씨는 김 전 의원의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전직 국회의원의 소개로 식사 자리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김씨를 만났다고 한다.
김씨가 접촉한 일부 인사는 그의 행태가 수상해 멀리했다고 하는데, 그런 김씨를 서로 소개시켜주며 카르텔처럼 인맥을 형성하고 금품을 받아온 정관계·언론계 인사들은 도대체 ‘직업윤리’라는 게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우리 사회 권력층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은 김씨가 최소 20여명에게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잡고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악을 고발하고 처벌해야 하는 수사·언론기관 인사들의 타락상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수사와 엄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