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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청소노동자에게 모멸감 준 서울대의 비인격적 ‘갑질’

등록 2021-07-08 18:47수정 2021-07-09 02:37

7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청소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관리직 간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모욕적인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물명을 영어로 쓰게 하는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공개해 망신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참으로 비인격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몸을 써서 일하는 노동자를 무시하는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된 행태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밝힌 내용을 보면, 서울대 기숙사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최근 청소 업무와 무관한 내용의 필기시험을 세차례나 치러야 했다. 새로 부임한 관리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건물의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거나 건물의 준공연도 등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회의 시간에 모든 노동자들 앞에서 시험 점수를 공개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노동자는 “동료들 앞에서 점수가 공개돼 자괴감을 느꼈다. 울음이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매주 한차례 열리는 회의 때는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할 것을 요구하고, 작업복 차림으로 온 노동자에게는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줬다는 폭로도 나왔다.

이런 ‘직장 갑질’ 실태는 최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50대 청소노동자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노조가 동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면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짜리 기숙사 한 동을 혼자 담당했던 고인은 최근 제초작업까지 떠맡게 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노조는 밝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일회용 쓰레기가 늘어 노동강도도 높아졌다고 한다. 서울대에선 2019년에도 60대 청소노동자가 ‘찜통더위’ 속에 에어컨과 창문도 없는 열악한 휴게실에서 쉬다 숨지는 일이 발생한 바 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관리자의 상식 이하의 ‘갑질’에 노동자들이 느꼈을 모멸감을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그나마 교수와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이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학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학교 쪽에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존엄하고 안전한 노동을 위해 서울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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