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숨진 23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18묘역에 비가 내리고 있다. 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5·18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이 23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마지막까지 단 한마디 반성과 사죄도 없었다.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한 것이 우리의 정서이자 관습이지만,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국민을 총칼로 학살한 내란 수괴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애도의 감정도 가질 수 없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으로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았고, 광주 5·18 민주항쟁을 총칼로 압살했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했다.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무자비한 폭압정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해 국민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또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등 정경유착을 일삼았다.
그는 생전에 여러차례 참회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죄과에 대해 뻔뻔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했다. 단 한번 미안한 기색조차 보인 적이 없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내란과 5·18 책임자로 법정에 섰을 때도 ‘광주 항쟁’을 ‘좌파 세력의 준동’이라고,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선 “폭동”이라 강변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한달 전 세상을 떠난 노태우씨와도 비교된다. 그래도 노씨는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유족을 통해서나마 사과를 했다.
전두환은 노태우씨와 달리 추징금도 25년째 내지 않았다. 검찰이 1249억원을 강제 집행했으나 여전히 체납액이 956억원에 이른다. 전두환의 가족들은 검찰이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염치없게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부인 이순자씨는 2017년 자서전에서 전두환의 5·18 책임에 대해 “정략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2019년 재판 출석을 앞두고는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궤변을 늘어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전두환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고 떠났다. 국가장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정부와 정치권이 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거나 애도를 표명한다면 매우 부적절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진정성 있는 사죄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조문과 조화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국민 학살자’에게 어울리는 논평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전두환으로부터 한마디 사죄도 받지 못한 5·18 영령들과 유족들이다.
최근 일부에서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되돌리려는 퇴행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뒤늦게 사과를 하긴 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1987년 시민항쟁 이후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 여론과 강성 극우 지지층 사이에서 눈치보기를 하는 것 같은데, 비겁한 침묵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자신의 지지층만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국민의 안위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보수 정당의 참모습이다. 지금과 같은 태도라면 국민의힘은 수구 정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노태우씨와 전두환의 연이은 사망으로 군사독재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온전히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5월 광주의 진상 규명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1980년 5월20일 밤 10시30분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첫 집단발포를 누가 명령했는지 밝히고, 생사도 확인되지 못한 행방불명자 신원을 찾아내고,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과 수습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진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5·18 영령들 앞에, 박종철·이한열 열사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의 법정에 공소시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