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노동, 시민 단체가 2020년 5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상병수단과 유급병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는 ‘아파도 참고 일한다’는 한국 일터의 불문율을 바꿔놓았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새로운 상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중소기업·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이거나 ‘희망고문’이다.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사업장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 무급휴가를 써야 하고, 퇴사를 강요받기도 한다는 것이 구체적 통계로 확인된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3월 말 전국 직장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확진 뒤 격리기간에 급여를 받지 못하고 무급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은 정규직에선 16.2%였지만, 비정규직은 42.1%에 달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도 40.3%나 됐다. 무급휴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노동약자층에서 코로나19 확진은 고스란히 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격리기간에 소득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정규직은 23.6%, 비정규직은 51.6%였다. 응답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10.1%는 코로나19 확진 뒤 퇴사를 권고받거나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이런 차별적 현실은 ‘법정병가’ 제도의 부재와 맞물려 있다. 현행 노동관계법에서 병가는 법적 의무가 아니고, 개별기업이 취업규칙이나 사규를 통해 도입한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조사에서 병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은 21.4%에 그쳤다. 1000인 이상 사업장은 96.7%가 운영하고 있지만, 상시 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12.9%만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 경제로 성장한 한국에서 노동자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법정병가 제도와 질병으로 인해 일을 쉬더라도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 제도가 모두 없는 현실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 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상병수당 제도 시범운영을 시작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법정병가 논의는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변이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앞으로는 또 다른 팬데믹이 언제라도 엄습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시대다. ‘아프면 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약자들의 현실을 국가가 이대로 무책임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는 법정병가와 상병수당을 조속히 도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