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뒤 피해자 단체인 ‘긴급조치사람들’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법원이 30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발동된 긴급조치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여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 ‘과거사 역주행’ 판결을 7년 만에 바로잡은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판결로서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최고 법원이 본연의 역할을 못해 정의 실현이 지연된 사례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1970년대 긴급조치 9호 피해자와 가족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혐의 등으로 체포돼 구금 생활을 했다. 1975년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이들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한 초헌법적 조처다. 대법원은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긴급조치 9호 발령에 따른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 유죄 판결을 통해 국민 기본권 침해가 현실화했다. 이런 일련의 국가작용은 위법하므로 이로 인해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2015년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최아무개씨가 낸 소송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는 이유로 항소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긴급조치가 위헌이고 무효이긴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1995년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내란 혐의에 대해 내놓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궤변에 비견되며 ‘면죄부 판결’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 판결 이후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속절없이 패소했음은 물론이다.
이날 판결로 모든 피해자의 상흔이 씻기는 것은 아니다. 2015년 판례 탓에 이미 패소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배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 대법원 판결은 당시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사례의 하나라는 의혹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바 있다. 사법부의 잘못으로 정의를 실현할 길이 아예 막혀버린 이들의 억울함을 해소할 실질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