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대추리 ‘강제 접수’ 안 된다

등록 2006-03-07 20:58

사설
엊그제 정부는 경찰 등 1200여명을 동원해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대추분교를 강제로 접수하려 했다. 한국 정부가 미군에 제공하는 600여만 평의 기지 터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다. 자기 땅에서 쫓겨나기를 한사코 거부해 온 300여 주민과 인권운동가의 마지막 요새 같은 곳이기도 하다.

다행히 경찰 병력은 접수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어미 아비가 생명을 낳아 기르고 한줌 흙으로 돌아간 고향 땅을 지키려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 이 염원으로 뭉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몸을 도저히 밟고 넘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강제 접수를 지시한 이 정부는 무엇인가. 자기 땅에서 쫓겨나게 될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손톱만큼이라도 알기나 하는 걸까. 지난 세기 초 수백만명의 한민족은 고향에서 쫓겨났다. 일제의 만주침공 이후 15만여 명이 만주 쪽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4만여 명이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식민지 수탈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 쪽으로 가 정착했던 17만여 명은 스탈린의 이민족 분리정책 탓에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쫓겨났다. 그때는 국권을 상실했으니, 그랬다고 치자. 지금은 뭔가. 주권국이라면 외국 주둔군을 위해 자국민을 강제로 이주시킬 생각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문화주권과 식량주권도 방기하기로 했으니, 이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걸까.

정부는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미군 주둔이 불가피하고 대추리 이외에 달리 터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국민을 내쫓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선 안 된다. 우리의 불행한 현실을 곱씹으며 눈물을 삼키는 한이 있더라도 평화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둘지 말고 정부가 끝까지 주민들을 설득하길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