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검찰 ‘굴복’인가, ‘무능’인가 |
삼성 에스디아이 노동자 위치추적 사건이 ‘예상’했던 대로 흐지부지 끝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을 기소중지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8명에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결국 ‘죽은 사람의 휴대전화’가 전·현직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해온 ‘엽기적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힐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모든 사건의 진상이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미궁에 빠진 사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위치추적 사건은 여러모로 정황증거가 뚜렷했다. 위치 추적을 당한 사람이 모두 노조 결성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노동자들이고,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퇴근 뒤 ‘추적’이 집중된 사실, 그리고 삼성 에스디아이 울산·수원공장에서 동시에 범행이 이뤄진 점에 비추어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말 그대로 삼척동자도 짐작할 사건이다.
그런데도 여섯 달이나 수사한 검찰이 진상을 밝히지 못한 것은 실망을 넘어 걱정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무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가 휴대전화 불법복제로 위치추적을 했어도 잡을 수 없는가”라는 고소인 쪽의 반문에 검찰은 어떻게 답할 셈인가. 불법 복제한 휴대전화로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한 것은 국제인권법은 물론이고,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을 유린한 범죄다. 게다가 범행 윤곽이 뚜렷한 사건조차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민은 인권이 유린당할 때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삼성은 올 들어서도 ‘노조원 매수사건’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 재벌이 노동자 인권을 잇달아 짓밟는데도 검찰이 외면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은 부도덕하고 옳지 못한 일이다. ‘삼성에 굴복’이라는 비판이 오해라면, 지금이라도 검찰 스스로 명예 회복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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