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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벌 비리, ‘법과 원칙’이 해법이다

등록 2006-04-27 18:46

사설
검찰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불구속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로써 한달여를 이어온 현대차 비자금 ‘본체’ 수사는 사실상 일단락된 셈이다.

정 회장 구속 방침은 기업 비리를 엄정하게 다루겠다는 검찰의 의지와 원칙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한다. 정 회장은 1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횡령)하고, 회사에 3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현행법상 5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는 범죄다. 더구나 비자금의 용처는 아직까지 거의 밝혀진 게 없고, 정 회장은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구속 기준인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보는 건 당연하다.

검찰은 정 회장 부자의 신병처리 수위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경제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걸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드러난 죄질의 경중을 가려 법과 원칙대로 처리할 일이지, 법 이외의 잣대로 저울질할 일이 아니었다. 불구속이 면죄부를 받는 게 아니듯, 구속이 곧 합당한 처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정 회장 구속 방침이 검찰의 강수나 결단으로 비치는 건, 지금까지 사법부가 ‘살아 있는 재벌’엔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검찰이 국가 신인도 등을 이유로 불구속 기소하면 법원은 정상참작 사유를 보태 면죄부를 줬다.

검찰과 법원이 여러차례 ‘기업 비리를 엄단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한 만큼, 드러난 혐의만 대충 ‘정리’하는 식으로 끝내선 안 된다. 비자금 용처와 로비 수사는 겨우 시작 단계다. 경영권 편법 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하고 공적자금으로 계열사의 부실을 털어낸 행위의 불법성도 명백히 가려야 할 것이다. 이번 수사와 재판이 기업 비리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 원칙을 세우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

정 회장에 대한 ‘선처 여론’은 우리 사회 ‘경제권력’의 위력을 새삼 웅변한다. 현대차는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으며 여론을 달래는 동시에 한편으론 위기론을 들먹이며 검찰을 압박했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경제 현실론’으로 맞장구쳤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경제 기여도가 큰 대기업의 불법행위에는 국가경제를 위해 면책특권이라도 줘야 할 판이다. 불구속 원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배려하자는 취지이지 사회 지도층의 불법행위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다. 힘 없는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권 투쟁에는 법대로를 강조하던 이들이 재벌한테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들먹이는 건 낯간지럽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물론 경영 공백으로 인한 단기적인 충격과 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환율과 유가 등 경영 환경도 좋지 않다. 현대차 수사는 황제경영과 무리한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불거진 총수 일가의 비리와 불법에서 비롯됐다. 공장의 작업반장까지 총동원돼 선처를 호소하고, 사회공헌으로 총수 일가의 비리를 가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기업과 총수를 동일시하는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을 탈피하고,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의사결정과 지배구조로 탈바꿈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진정 경쟁력 있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총수의 구속을 노심초사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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