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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 불려간 공인들의 잇단 자살

등록 2006-05-16 18:53

사설
전 서울시 고위 공무원이 현대차그룹 로비 의혹과 관련한 검찰 조사를 받아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곡절이 어찌됐건 검찰 조사를 받던 공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잇따르는 건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강압수사 의혹에 대해, 여러 수사관이 있는 공간에서 조사를 했으며, 폭력·폭언 등은 일체 없었다고 손사래를 친다. 물론 범죄 혐의를 다투는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이 느끼는 심리적 중압감까지 검찰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잊을 만하면 이런 일이 불거지는 것 또한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고인은 유서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험한 말을 들었다는 유족과 지인들의 진술도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이번 일을 자체 감찰조차 하지 않겠다는 건 안이한 태도다. 매번 개인적인 죄책감·중압갑 때문으로 결론짓고 넘어간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피할 수 없다. 단순히 검찰의 결백을 증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예방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나아가 기존의 낡은 수사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지 냉철히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형사소송 체계는 엄격한 증거주의와 공판 중심주의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권 보호는 물론 범죄 사실 입증을 위해서라도 과거처럼 진술에 의존한 수사 관행을 바꾸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검찰이 현대차 비자금 관련자 일괄기소 방침을 미뤘다고 한다. 이번 일로 현대차그룹의 사용처 수사가 차질을 빚어선 안 된다. 현대차 사옥 관련 수사는 용처와 로비 의혹 수사의 첫단추다. 핵심 인물의 자살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의혹에 연루된 관련자들이 고인한테 책임을 떠넘길 여지가 많아진 만큼 더 엄정하고 투명한 수사를 해야 할 것이다.

비리나 범죄 혐의를 받는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 방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잘못된 관행은 끊어야 한다. 책임이 있으면 달게 받고 결백하다면 법정에서 당당히 가리는 게 올바른 공인의 처신이다. 자살을 선택한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고 동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칫 ‘명예 자살’이라는 그릇된 관행을 후대하는 분위기로 흘러 본질을 가려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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