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31 지방선거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여권 정치인들이 선거 뒤 보여준 태도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저 혼자 살겠다고 안달복달하는 모습은 난파선의 쥐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정치인의 생명인 소신과 신념, 그리고 비전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초선 의원들의 약삭빠른 변신은 참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체제를 정비하고자 출범한 비상대책위도 수준을 의심케 했다. 비대위원들은 부동산 정책 등 그나마 국민으로부터 평가받는 것들은 파기하고, 실패를 불러온 시장일변도 정책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결과는 오만에 무능까지 갖춘 여당에 대한 심판이었는데, 더 큰 무능을 선택하도록 재촉한 것이다. 있던 쪽박마저 깨버리겠다는 것이니 선거 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더 떨어진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드러낸 현실 인식과 쇄신 방향은 표류하는 여권 논의의 중심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오류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무비판적 수용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로 말미암아 저투자, 저성장, 저고용에다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두고선 “시한에 얽매여 무모하게 추진돼선 안 된다”고 말했고, ‘개발독재형 관료들의 폐해’를 환기시켰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뼈대와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되면, 가장 득세하는 게 관료들이다. 관료들은 특히 임기 초 여권이 추진한 각종 개혁정책을 일쑤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다. 5·31 선거 결과는 이런 여권의 표류와 관료의 득세를 앞당기는 효과를 낳았다. 이런 상태로는 여권이 추진하는 서민경제 회복은 공염불로 끝난다. 김 의장의 인식과 방향 위에서 질서있는 토론과 협의를 거쳐 서민의 삶을 되살리는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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