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법 불신만 키운 두산그룹 비리 재판

등록 2006-07-23 20:52

사설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회삿돈 286억원을 횡령하고 2838억원에 이르는 분식회계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형량이 재량권을 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소 사실이 모두 유죄로 판명났으니 검찰로서는 대법원에 상고할 명분도 없어졌다.

이번 판결은 단지 ‘유전무죄’라는 법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재판부는 총수 일가가 회삿돈과 비자금을 경영을 위해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됐으며 피해 금액을 모두 변제한 점 등을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검찰 수사를 통해 불법 행위가 드러나자 그제야 횡령액을 상환했다. 비자금을 총수 일가의 생활비로 유용한 파렴치한 행위는 국가경제 기여도라는 논리로 가렸다. 분식회계는 불가피한 관행이었다는 판에 박힌 해명도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형평성도 문제다. 불과 얼마 전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은 횡령액 220억원을 모두 변제하고 경영 목적의 비자금 조성이 참작됐지만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식으로 기업 비리에 온정적인 재량권이 행사된다면, 실형을 선고받을 ‘기업 비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최저 법정형이 5년인 비리 사건에 이중 삼중의 양형 감경을 통해 면죄부를 준다면 살아 있는 재벌에 대한 법 심판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두산 총수 일가는 몇 차례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은 게 실질적인 처벌의 전부다. 이들이 과연 합당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지 재판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두산그룹 비리 사건은 법원과 검찰이 기업 비리와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고 다짐했던 계기가 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려는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검찰이 총수 일가를 모두 불구속 기소하면서 내준 면죄부를 법원이 최종 승인해 준 셈이 됐다. 기업 비리에 경종을 울리기는커녕, 살아있는 재벌에는 한없이 여린 우리 사법부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최근 법조비리 사건으로 사법부 전반에 대한 불신이 고조된 터다.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 개혁은 말이 아닌 실천이다. 법원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신뢰 회복은 아직 먼 얘기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