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이 최근 펴낸 동북공정 2차분 연구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것은,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중국 중앙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공정은 중국 국무원 산하 두뇌집단인 중국사회과학원의 중국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에서 2002년부터 내년까지 진행하는 국책사업이다. 중국 정부가 돈을 대며, 사업 목표는 ‘중국의 동북지역(만주)에 존재했던 역대 왕조는 모두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의 영토 안에서 이뤄진 과거 역사는 모두 내 것이라니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역사왜곡인가. 연구 논문 중에는 한국 고대사를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 한사군,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해석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논리가 허술하고 내용이 조악해 학문적으로 가치가 낮은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연구 결과가 중국 국가 운영과 현실 정치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년 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 가운데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왜곡된 내용이 공식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괜한 우려가 아니다.
중국이 진정으로 이웃나라를 존중하고 ‘경쟁과 공존이 함께하는 국제사회를 건설’(조화세계론)하는 외교방침을 준수한다면 동북공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정부에서 미리 정한 결론에 역사를 꿰맞추는 것은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의 주요한 특징이다. 나치 독일이 그랬으며, 일본의 역사 왜곡도 군사대국 의도와 맞물려 있다. 남의 역사를 침탈하면서 한편으로는 우호를 내세우는 것은 위선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에 대해 역사 왜곡을 중단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해 쉬쉬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 2년 전 중국과 합의한 ‘5대 구두 양해’에서 동북공정 문제를 제외했던 결과가 지금과 같이 나타났다. 아울러 학계가 자율적으로 역사 연구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정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대사 체계를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다. 박사 인력이 고조선 1명, 발해사 2명, 부여사 0명 등에 불과한 현실로는 중국의 역사 왜곡을 막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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