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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영원한 기자 리영희의 비판 정신, 면면히 이어져야

등록 2006-09-19 18:27

사설
‘영원한 기자’ 리영희 선생은 1964년 〈조선일보〉 근무 중 필화로 구속된 뒤 89년 〈한겨레〉 방북취재 계획으로 구속되기까지 아홉번 연행돼 다섯번 구속당했다. 69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뒤 모두 네차례(언론사 2번, 대학 2번)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 가시밭길을 걸으며 그는 기자 혹은 학자로서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했다. 거짓의 우상을 깨고자 했다. 그 결과 베트남전쟁의 은폐된 진실, 미국 패권주의의 추악한 모습, 정권의 위선과 부패의 실상이 드러났다. 그에게 진실은 모두가 나누어야 할 생명이었다. 때문에 밝혀진 진실은 글로 옮겨졌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이었다. 저작이 나올 때마다 구속이나 연행을 감수해야 했다. 선생의 글은 거짓에 중독된 이성을 깨웠고, 권력에 짓눌린 지성을 일으켜세웠다. 고난받는 이들에겐 어둠속의 한 줄기 빛이었고, 권력자에겐 정수리를 후비는 비수였다.

후학들이 선생의 저작을 모아 엊그제 〈리영희 저작집〉 발간기념회를 열었다. 비판적 지성인의 저작이 생전에 전집으로 출간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나, 선생이 걸어온 길, 선생의 글이 세상을 밝게 비췄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이르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선생이 이를 계기로 절필의 뜻을 밝혔다니, 가슴이 서늘하다. 한 시대의 막이 이렇게 내리는가.

선생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했던 주장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니, 내 글의 소임은 다 한 것 같다. 사상가는 자신의 생각이 사회에서 수용되고 실현되면, 기꺼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 엄정한 진퇴가 후학의 자세를 다잡게 한다. 그러나 선생이 말한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한때 우상 앞에서 나팔 불고 춤 추던 무리들이 선생을 진보 지식인의 대부라고 추어세우는 척한다고 하여 우리 사회가 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들은 ‘냉전 수구’의 본질을 보수로 포장하여, 우리 사회에서 진실의 한 담지자로 행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전시 작전통제권과 북한 핵·미사일 따위를 들먹이며, 우리 사회를 냉전의 동굴 속으로 디밀고 있다. 게다가 우상의 정체를 드러낼 양심세력은 날로 쇠잔해지고 있다. 지금은 등불을 끌 때가 아니다. 오히려 높이 올려야 한다. 이제 누가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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