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문들의 성폭력 보도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가 6개 중앙 일간지의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성폭력 보도를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다. 민우회는 공공성보다는 선정성이 더 두드러졌다며, 성폭력 예방에 더 신경 쓰는 보도 태도를 촉구했다.
사실 이런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동안 언론들은 여성단체나 인권단체로부터 수없이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직 비슷한 문제 지적이 이어진다는 건, 언론 전체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성폭력 문제를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일이 많이 줄긴 했다. 언론과 사회 전반의 점진적인 인식 변화,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 진출과 발언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민우회의 분석을 보면 아직도 문제가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번에 지적된 대표적인 문제점은, ‘발바리’ 따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용어 사용, 성폭력을 연애나 성적인 관계와 은연중에 연결시키는 자세, 피해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태도 등이다. 쓸데없이 사건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여전히 지적됐다. 실효성이 없거나 입증되지 않은 대책을 부풀려서 보도하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이런 보도 태도는 성폭력이 극악한 범죄자들이나 저지르는 예외적인 일이라거나, 피해자가 조심하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리기 쉬운데, 이는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생각이다. 성폭력은 대체로 주변 인물을 상대로 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비교적 흔한 범죄인데다,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뿌리뽑힐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몇 해 전 한 조사에서는 피해자의 82%가 ‘아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성폭력은 연애나 남녀의 성관계와 성격이 전혀 다른 잔인한 폭력일 뿐이다.
그럼에도 잘못된 통념을 확산시키는 보도가 여전한 데는 언론인들의 인식과 상업성 추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들부터 바뀌지 않으면 이런 성폭력 보도를 뿌리뽑을 수 없다. 성폭력을 우리 주변에 흔한 일상적인 위협 요소로 인식하고 이를 막는 데 기여하겠다는 인식이 언론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민우회가 이달 말 발표할 ‘성폭력 보도 기준’을 모든 언론인들이 진지하게 검토해 수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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