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생체정보 인식기 도입 신중해야 |
손등의 혈관 모양으로 사람을 식별하는 ‘정맥 인식기’가 관공서와 대학, 기업 등에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전국 관공서에 설치됐던 지문 인식기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 따라 철거되고 있는 터에 새로운 생체정보 인식기가 확산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우리 벤처기업이 처음 개발한 정맥 인식기는 근태 관리와 출입 통제용으로, 카드 시스템 등에 견줘 간편하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본인이 아니면 인식이 안 되고 초과근무 시간 등이 자동으로 계산되는 이점이 있어 이미 2천여대가 설치된 상태다. 그러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측면만 보고 생체 인식기를 도입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생체정보는 신원 확인을 위한 확실한 방법일 뿐 아니라, 개인의 특성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는 고유하고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생체정보는 유출되면 심각한 사생활 침해와 함께 상업적 이용, 사회적 차별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정보인권 의식이 취약하다.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을 떠돌고, 개인 신용정보 서류가 폐지 더미에 나돌아다닐 정도로 허술하다. 따라서 생체정보 인식의 적용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사전에 충분한 대비책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권 침해와 노동 감시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해당 업체는 지문과 달리 정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생체 특징을 데이터로 엮어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법적 근거나 본인 동의 없이 생체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해당 기관들이 직원들이나 이용자들의 동의를 구했는지 의심스럽다. 생체 정보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턱없이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정보 수집의 법적 근거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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