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개혁 조처들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자는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 열린우리당에서도 변재일 제4정책조정위원장이 찬성하고 나섰다. 집값 폭등으로 대상자가 많이 늘어났기에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야 모두 당론이 아니라고 꼬리를 내렸지만 일단 운을 뗀 이상 다시 거론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재정경제부도 “주택 공급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후분양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후분양제는 공공기관이 짓는 아파트를 일정 공정(2007년부터 40%, 2009년부터 60%, 2011년부터 80% 이상)이 지난 뒤에 분양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주택시장을 정상화하고 분양값 뻥튀기를 막고자 도입된 정책으로, 오랜 논란 끝에 결정돼 시행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다. 공공택지 내 민간아파트는 후분양을 하면 택지 공급 우선권이 주어진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시행도 해보지 않은 제도를 다시 바꾸자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줄 뿐이다. 특히 지금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에 극도로 민감한 상황이다. 원하든 않든 참여정부의 정책이 원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란 신호로 비칠 수 있다.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섣부른 새도시 발표가 시장 혼란과 집값 폭등의 구실이 됐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11·15 대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공급 확대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다. 종부세를 완화하고 후분양제를 재검토하자는 것은 수요관리 정책과 분양제도 개선을 접어두고 공급 확대라는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부동산 대책에 보완이 필요하다면 주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어렵게 도입한 부동산 세제개혁의 취지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후분양제도 마찬가지다. 분양시장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때를 놓치면 다시 도입하기 어렵다. 세금이 줄면 국민은 좋아하고, 후분양제를 연기하면 주택 공급 시기는 좀 당겨진다. 그러나 부동산 개혁은 껍데기만 남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땜질식 처방만 반복될 것이다. 집권 말기를 틈 타 개혁을 뒤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