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헌재 ‘폄하’가 아니라 ‘고언’이다 |
김영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정년퇴임 자리에서 ‘헌재 폄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재판관은 판결로 말한다지만 의견을 밝히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가 오늘날 헌재의 존재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은 보이지 않고 화살을 바깥으로 돌리며 헌재의 권위만 강조한 것 같아 씁쓸하다.
그는 “지난해 헌재가 내린 중요한 결정들을 폄하한 지각없는 행위를 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진정 나라를 위하고 헌법을 수호하며 국민 의지를 대변하는 사람들인지 대단히 의심된다”고 했다. 수도이전 특별법 위헌 결정을 비판했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겨냥한 듯하다. 그는 또 “법의 고유 의미를 찾고 헌법 정신을 해석하는 작업은 오랜 세월 법을 해석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헌법 정신을 찾아온 법률가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을 사회 각 영역의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이다.
지난해 헌재의 수도이전 특별법 위헌 결정은 숱한 논란과 비판을 낳았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여야가 합의한 법안을 헌재 스스로가 ‘관습헌법’이라는 생소한 논리로 막았기 때문이다. 위헌 결정이 나고 나서도 여야는 행정도시 특별법에 합의해 청와대와 국방·외교·통일부 등 몇몇 부처를 빼고 다수 정부 부처를 옮기려 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에 무리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수도이전이 위헌이라는 데 찬성한 김 재판관은 호주제에 대해 전통문화에 터잡은 것인만큼 호주를 정의한 민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런 의견은 여성을 비롯한 다수 사회 구성원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헌재 구성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열에 바탕한 지금의 헌재 구성으로는 소수자 권익을 보호하고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진정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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